김낙수는 김홍식보다 행복해졌나?

이광수의 진보를 위한 투자 서울의 달에서 김부장의 아파트까지

등록 : 2026-01-08 13:10 수정 : 2026-01-0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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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달’. 문화방송·JTBC 제공

1994년 대비 2025년 소득 격차 심화
지난해 1∼5분위 소득 차이 9배로
주관적 빈곤 ‘심화’…노력 확신 ‘흔들’
서울에 ‘희망’ 줄 답을 찾아나갈 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자산 격차와 불평등 그리고 불확실성의 시대, 서울&은 평범한 서울 시민들이 자존감을 지키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이광수 투자분석가와 함께 사회구조적 변화를 통찰하고 희망의 근거를 찾아가는 ‘진보를 위한 투자’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1994년 MBC에서 방영된 ‘서울의 달’은 서민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최고 시청률 48.7%를 기록한 전설적인 드라마다. 화려한 서울의 겉모습이 아니라 달동네를 배경으로, 성공을 꿈꾸며 상경한 청춘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드라마의 진솔한 내용은 대한민국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대학 2학년이던 필자에게도 이 드라마는 공감과 위로였다. 그리고 꿈을 주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꿈과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서울의 달’은 1990년대 서울의 얼굴을 가장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가난한 달동네 이웃들의 소박한 일상,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사람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내일을 꿈꾸던 청춘들.


화면 속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의 삶과 맞닿았다. 그 시절, 우리를 살아가게 한 힘은 당장의 현실보다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확고한 희망과 꿈이었다. ‘서울의 달’은 그 믿음이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지탱하는지 보여줬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청춘은 중년이 됐다. 1972년생, 대학생이던 ‘김부장’은 대기업에 다니고, 서울에 자가도 마련했다. 사회가 요구한 과정을 충실히 밟았다. 대학을 졸업했고, 취직했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겉으로 보면 성공한 삶이다. 그렇다면 김부장은 행복할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문화방송·JTBC 제공

지난해 큰 인기를 끈 JTBC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이런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이 작품을 필자는 30년 전 ‘서울의 달’의 후속편처럼 보았다. 달동네에서 꿈을 품던 청춘이 중산층 가장이 되기까지의 시간, 치열하게 일해 얻은 안정.

그러나 행복해야 할 김부장의 하루는 밝지 않다. 회사에서는 성과 압박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무겁다. 집은 있지만 마음 둘 곳은 없어 보인다. 꿈을 이뤘는데도 삶은 더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개인의 노력이나 선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있다. 숫자로 확인되는 사회구조의 전환이다. 1994년 우리 사회의 소득 5분위와 1분위 소득 차이는 약 3.7배였다. 고도성장기의 끝자락이었고,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소득 분배도 지금보다 고른 편이었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약 70%의 시민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했다. 현실은 어려웠지만 노력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분명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2025년, 소득 5분위 배율은 약 9배에 이른다. 상위와 하위의 소득 격차는 두 배 이상 벌어졌다. 절반 넘는 시민이 자신을 하위층으로 인식한다. 객관적 소득과 별개로, 주관적 빈곤이 깊어졌다. 노력해도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

공간도 달라졌다. 달동네는 재개발로 사라졌다. 대신 지역별 아파트 가격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다. 1994년 서울로 온 청년들은 가난했지만, 골목이 있었고, 이웃이 있었고, 관계가 있었다. 지금의 서울 청년들은 고시원, 원룸텔, 지하방을 전전한다. 주거는 개인화됐고, 삶은 고립됐다.

‘서울의 달’ 주인공 김홍식은 일정한 직업도 없고, 서울에서 방 한 칸 얻기도 어려운 인물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김낙수는 대기업에 다니며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다. 물리적 조건만 보면 김낙수의 완승이다. 그렇다면 김낙수 부장은 당연히 더 행복해야 한다.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옛날보다 좋아졌잖아. 더 잘살잖아. 더 풍족해졌잖아.” 이 말은 통계적으로는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삶을 위로하지 못한다. 삶의 만족은 절대적 수준보다 상대적 위치와 미래에 대한 기대에 크게 좌우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질 때 풍요는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

1994년의 ‘서울의 달’은 힘든 일상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2025년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불안을 보여준다. 더 많이 가졌지만, 희망이 없어진 사회의 초상이다. 물리적 조건은 분명 개선됐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오히려 희미해졌다. ‘서울의 달’ 주인공 홍식은 “서울 하늘 아래 내 땅 한 평 없다”며 신세를 한탄했지만 이제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강남 아래 내 땅 한 평 없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회복해야 할까? 서울은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앞으로 한겨레 서울&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답을 찾고 싶다.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korea.analyst@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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