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 핫 플레이스

계단장은 없어졌지만 젊음의 발걸음은 여전

한남동과 보광동 가로지르는 우사단길

등록 : 2017-06-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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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로에 들어선 개성 넘치는 가게. 용산구 제공
미세먼지 없이 상쾌한 바람이 불던 지난달 어느 날, 우리 구 ‘우사단길’을 찾는 발걸음이 가볍다. 정확히 말하면 우사단로10길. 하지만 보통은 줄여서 우사단길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사단(雩祀壇)이란 “가뭄이 계속될 때 하늘에 비를 빌어 풍년이 들도록 기원하던 제단”(한국민족대백과사전)을 말한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를 지나 2분간 직진하면 터키 아이스크림을 파는 케밥집 청년을 만날 수 있다. 보광초등학교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할랄’ 음식점과 ‘히잡’ 쓴 여인들, 그리고 저 멀리 새하얀 ‘이슬람 사원’이 어우러져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원 정문 앞으로 난 도로가 바로 우사단로10길. 드디어 도착이다.

거리는 한남동과 보광동을 가로지른다. 마을 사람들은 좌우 없이 잘 어울려왔다. 헌데 오랜 기간 비어 있다시피 한 가게들이 3~4년 전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움을 찾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낡은 가게들 틈으로 ‘정체불명’의 새 가게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간판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가능세계(可能世界), 인생밥집, 햇빛서점…’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름들이다. 하늘과 가까운 고지대지만 건물이 낮아 아늑함을 자아낸다. 마음이 평화롭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인다. 이곳 어딘가 우사단 하나쯤 있을 법하다.

거리의 터줏대감은 ‘숙이네 닭발’이다. 과거 ‘숙이네 분식’이었으나 유명 연예인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닭발이 유명해지면서 상호와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제는 닭발만 판다. 어느 원주민은 “더 이상 숙이네서 쫄면을 먹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평일이라 거리는 대체로 한산하다. 우사단길 한가운데 있는 ‘식탐’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3년 된 가게다. 누나의 뒤를 이어 남동생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간 건물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는데 다행히 월세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한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이어갔다. ‘하늘빛’이라는 예쁜 이름의 어린이집이 있다. 원장님께 협조를 구해 어린이집 뒷마당을 둘러봤다. 아래로 한남동과 한강이 한눈에 펼쳐졌다. 밤에는 “두바이 못잖은” 야경이란다. 아이들 49명이 파란 하늘을 보며 자라고 있다. 우사단길은 드넓은 한남뉴타운(재정비촉진구역) 중에서도 진행이 가장 빠른 곳이다. 어느 미용실 사장님은 “서울에 이런 곳이 또 없다”며 “아파트도 좋지만 이런 길 하나쯤 남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사장님은 ‘낭만적인 조합원’이다.

한동안 이곳 우사단 거리를 달궜던 ‘계단장’ (벼룩시장) 행사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재미없어졌다’는 게 주최 측 의견이다. 이후 거리는 예전보다 조용해졌다. 하지만 작고 예쁜 가게들은 계속해서 둥지를 틀고 이런 곳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우사단길은 여전히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냥 가기 아쉬워 다방에 들렀다. ‘동구’라는 별명을 가진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고 그의 예비 신부가 옆에서 홈 가드닝 수업을 한다. 카페 자체가 이미 정원이다. 초록빛과 커피의 기운으로 자리를 뜨려는데, 또 선물로 장미를 한송이씩 건넨다. 분홍빛 장미꽃이 새색시처럼 곱다.


김재훈 용산구청 홍보담당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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