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도쿄에서 종이 무가지가 범람하는 이유는?

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등록 : 2016-03-31 15:01 수정 : 2016-05-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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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은 웬만한 예약은 모두 휴대폰으로 처리한다. 먹거리에서부터 부동산, 쇼핑, 여행, 취직, 취미생활까지. 그래서 일본에서는 휴대폰과 엄지손가락 두 개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휴대폰만사형통’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물론 그 덕분에 젊은이들이 즐겨 보던 스포츠지나 연예신문사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게 됐지만.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이렇게 젊은 계층의 절대적인 온라인 충성파도 막상 신뢰가 요구되는 정보가 필요할 때는 종이매체에서 그 정보를 찾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구인 정보나 방을 얻을 때, 진짜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을 때는 온라인이 아닌 정보매체 전문 잡지를 통해서 얻는다. 이유는 온라인 정보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신뢰성을 장담할 수 없지만, 정보잡지는 기록물이어서 신뢰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온·오프라인의 건설적인 공존 형태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일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쿄도에는 무·유가 정보지만 수백 가지다.

각종 정보지가 빼곡한 일본의 가판대. 일본 역시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됐지만 신뢰가 필요한 정보는 발행 주체가 명확한 종이매체를 선호한다.

지역에서 발간되는 정보지도 그 지역 특성에 따라 관공서 지역에는 인턴 등 구인 정보가, 시부야 신주쿠는 유명 신상품과 값싸고 친절한 식당가, 유흥업소 소개가 주류를 이루고, 세타가야구나 기치조지, 무사시노시에는 화가 등 아티스트가 많아 개인 전시회 같은 것을 주로 소개한다.


일본 아티스트의 전시회는 그림이나 조각 등 직접 손으로 만든 작품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어 젊은이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 중에는 일부러 일본에 와서 이런 전시장을 돌며 작품을 구입해 강남이나 인사동에서 비싼 가격에 파는 이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일본 젊은이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보지는 주택과 아르바이트 관련 무가지다. 역마다 수십 종류의 무가지가 비치되어 있는데 인기가 워낙 많아 이삼일이면 동난다.

주택 정보지의 경우, 지역별로 일반주택과 아파트로 나뉘어 면적과 방세 등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 아르바이트 정보지도 마찬가지다. 업종별로 시간과 시급, 해당 업소의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젊은이에게 인기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휴대폰에 의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프라인인 종이매체를 찾는다. 바로 이런 일본인들의 성향은 지난 20여년간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종이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일본인의 특징은 무엇이든 늘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다. 아주 소소한 개인적인 일일지라도 그들은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기를 좋아한다.

그 기록의 좋고 나쁨을 떠나 우선 생활화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초등학생이나 사용하는 연필이 일본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실제로 일본인 집에 가보면 식탁 위나 전화기 옆에 메모지와 함께 여러 개의 연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관공서에 가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인 서류에 기입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필로 메모를 한다.

그래서 식자층에서는 일본 문화엔 ‘기록문화’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정의한다. 기록문화는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정보의 보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컴퓨터에 입력해 저장해놓은 것을 기록문화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록이라고 부를지언정 ‘문화’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다.

기록문화는 곧 종이문화다. 이 때문에 일본 가정, 관공서, 회사에서 연필과 메모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의 기록문화도 절대로 사멸하지 않는다. 기록은 곧 정보인 만큼 일본의 정보문화 또한 상당히 발달해 있다.

가정의 메모지와 연필로 시작된 기록문화는 수많은 정보를 양산하고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일본인의 생활에 ‘라이프 내비게이션’이 되어주고 있다.

글.사진 유재순 일본 전문 온라인매체 <제이피뉴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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