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기의 서울 골목길 탐방

아관파천의 ‘건춘문’ 앞, 수십만 촛불의 함성이…

중학동 골목길

등록 : 2016-12-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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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1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는 청와대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그 행진은 120년 전 고종이 풍전등화의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탈출한 건춘문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란기 제공

조선 후기 경복궁 건춘문 밖에서 군대가 훈련을 하고 있다. 문 앞 삼청동천 위로 종친부로 건너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지금은 복개되어 개천이 있었는지조차도 잊히고 있다. 고종이 탄 가마는 이 건춘문을 통해 경복궁을 탈출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수년 전에 경복궁 앞, 동십자각 건너편 삼각형 모양의 땅 위에 ‘바그다드 카페’란 커피집이 있었다. 그 커피집에 앉아 ‘콜링 유’(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삽입곡)를 들으며 경복궁을 바라본 적이 있다. 경복궁 금천에서 흘러나온 물이 궁장(궁궐 성벽) 밑을 나오면서 인근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빨래터가 되었다. 그곳을 수문이라 하고, 이 삼각형 마을은 수문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복궁 건춘문 앞에서 신식군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찍은 옛 사진이 예사롭지 않다. 그 사진의 전후 사정보다는 건춘문을 통해서 고종이 나온 것에 주목한다. 아관파천 때의 일이다. 혹자는 경복궁의 북측 후문인 신무문을 통해서 나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서문인 영추문을 통해서 나갔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고종은 경복궁의 어느 문을 통해서 러시아공사관으로 갔을까?

2016년 초겨울에는 건춘문 앞으로 수십만 촛불이 지나간다. 아니 서쪽 영추문 앞에서도 촛불의 함성이 들린다. 다만 신무문 앞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딱 120년 전 신무문 바로 안 건청궁에 있던 고종은 신변의 위험으로부터, 그리고 나라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경복궁을 탈출하여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황현의 <매천야록>은 고종이 건춘문을 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교의 <대한계년사>에서도 같은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밖에는 어디에서도 아관파천 때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기록물은 안 보인다. 고종과 세자가 함께 탄 가마는 건춘문을 나온 후 어느 경로로 러시아공사관에 도착했을까?

건춘문을 나오면 백악(북악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삼청동천과 만나고 동십자각 바깥쪽을 지나 중학동을 따라 흘렀다. 이쯤에서 개천 이름은 중학천이 된다.

2016년 12월 광화문 광장에서 매주 수십만, 100만, 200만 군중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있지만 그 뒷길인 중학동 길에는 이 길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군중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광장에서 울려나오는 어마어마한 저음의 함성이 무섭게 메아리치고 있다. 엄비가 군주의 음식물을 준비한다며 매일 새벽 가마를 타고 시전으로 나갔을 길은 시전이 있는 종로 방향인 중학동 길은 아니었을까?


고종이 탄 가마가 육조거리를 지나 황토현을 넘어 아라사공관(러시아공사관)으로 갔을까? 두 달 전 ‘춘생문 사건’으로 한 번의 탈출에 실패한 고종이 육조거리를 지나 아라사공사관으로 갔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당시 황토현은 지금의 세종로 네거리이다. 그때는 황토현에서 대한문에 이르는 길은 없었다. 남쪽 남대문을 향하여 가던 길은 대로로 지금의 남대문로와 소로인 무교동길이 있었을 뿐이다. 중학천 물길을 따라 형성된 길은 종로에 이르러 혜정교를 건넌다.

60년대에 삼청동천과 중학천은 복개가 되어 도로가 되어버렸고 근자에는 청진지구 도심재개발로 물 없는 유사품 개천 모습을 만들어 두었지만, 옛 사진들에는 멀리 동십자각을 둔 천변 길을 오롯이 보이고 있다. 중학천 끝부분에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피맛길이 있었고, 옛 시전 건물도 몇 채 남아 있었다. 엄비의 가마는 고종 탈출 수일 전부터 매일 새벽 이 시전에 음식 재료를 사러 간다고 하며 건춘문을 나와 중학동 길로 이동하는 연습을 하였다고 했다.

고종과 세자가 탄 가마는 청계천을 건너 지금의 무교로로 가게 되고 서울시청 뒷길에서 세종대로를 건너 경운궁(후에 덕수궁)의 뒷길에 이른다. 이미 영국공사관은 들어와 있었다. 최근 서울시와 협의하여 조만간 개방하기로 한 영국대사관과 사잇길을 지나 미국대사관저 부지 내 뒷길을 통해 옛 러시아공사관에 이르게 된다. 이런 추정의 근거는 무엇일까? 지금도 미국대사관저 담장 안에는 옛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오롯이 남아 있다. 고종이 아관(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 후에도 언제라도 아관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러시아공사관 비밀통로’라고 말한다. 문화재청은 이 길을 포함하여 덕수궁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2016년 광화문광장에서는 퇴진 함성이 포효하는 가운데, 부패한 집권자는 수십만 개 ‘촛불 앞의 정권’이 되었지만, 120년 전 고종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된 국가를 두고 궁을 탈출함으로써 정권을 연장하였다. 바깥의 침략자들로부터 그리고 그에 기생하는 일부 배신자들을 피해 여장한 채 가마에 실려 골목길로 갔다.

사람들은 그곳에 개천이 있었는지, 그 길이 역사의 변곡점이 된 길이었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 같지만, 촛불의 함성은 다시는 반역의 역사를 허용치 않겠다고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호로 ‘김란기의 서울 골목길 탐방’ 연재를 마칩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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