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 문학기행

별처럼 빛나는 골목길 불빛

성북동에 남아 있는 김광섭 시인의 흔적

등록 : 2016-12-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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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공원의 김광섭 시인 시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등의 시로 기억되는 김광섭 시인의 흔적을 찾아 성북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가 살던 집터에는 빌라가 들어섰다. 성북동 산에 살던 비둘기들은 쫓겨난 지 오래, 저녁이 되면서 별 하나가 성북동 골목을 비추고 안식의 저녁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앞에 골목길 창밖으로 새어나는 불빛이 있다.

성북동 언덕에 있는, 김광섭 시인이 살던 집터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직진한다. 김광섭 시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에 노래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발걸음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린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노래로 만들어 유심초가 부른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 일부

노래에는 2절과 후렴구 등이 덧붙었지만 위에 소개한 1절 부분은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에서 단어와 조사 몇 개만 고치고 그대로 옮겼다.

노래로 만들어진 시 구절을 한 줄 한 줄 생각하며 걷는다. 병천순대집과 참나무닭나라집 사이 골목으로 우회전한 뒤 직진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올라서면 삼거리가 나오고 정면에 ‘원익스카이빌’이 보인다.

원익스카이빌 자리가 김광섭 시인이 살던 집터다. 시인이 살던 때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어떤 표식도 없다. 다만 번지만 남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위로한다.


시인이 살던 집은 성북동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 우측 언덕바지에 있었다. 시인의 집터에 들어선 빌라 앞에서 보면 맞은편 산과 산비탈에 지어진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북동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다는 주민에게 옛 얘기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지금 차가 다니는 도로는 개천이 흘렀고 개천 옆으로 좁은 길이 있었다고 한다. 개천을 건너 산비탈에 있는 집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광섭 시인이 이곳에 살 때도 그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성북동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복개하지 않은 옛 하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기록연구소에서 2014년 발행한 <김광섭 자서전, 나의 이력서-시와 인생에 대하여> 155쪽에 ‘1965년 6월22일에 앰뷸런스와 들것에 실려 내 집 안방에 눕게 됐다’고 나온다. 또 같은 책 158쪽에 ‘1965년 10월31일 저녁, 나를 낳아 길러주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적혀 있다. 이 일들이 김광섭 시인이 성북동 집에서 살 때 일어났다.

그래서였을까?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 집에 대한 애착이 식어 동소문으로, 다시 미아리로 집을 옮겼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회고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성북동 비둘기’는 성북동 집에서 구상해서 미아리 집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1905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1938년 첫 시집 <동경>을 세상에 선보인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살이하기도

그리고 1941년 경성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44년까지 옥살이를 해야 했다. <김광섭 자서전, 나의 이력서-시와 인생에 대하여>에 당시의 예심종결서 내용이 나온다. 그중 한 부분이 ‘조선어 과목 폐지는 조선어의 말살을 목표로 한 정책이므로 조선 민족이 존속하는 한 조선어의 절멸을 할 수 없도록 강조 선동하다’였다.

김광섭 시인은 광복 이후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시인으로서 흔히 가질 수 없는 독특한 이력이다. 그 기간 중에 두 번째 시집 <마음>을 발간하기도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펜클럽, 한국문인협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시 창작에 전념한다.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등 그의 대표작들을 1965년 병을 얻은 뒤에 병과 싸우면서 완성한 것으로 볼 때, 시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겠다.

심우장 가는 길에 비둘기공원

김광섭 시인이 살았던 집터에서 나와 왔던 길로 돌아나간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서 큰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한다.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심우장을 지나 골목길로 올라가면 비둘기공원이 나온다. 비둘기공원은 ‘성북동 가로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작은 공원인데,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 때문에 비둘기공원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공원 벽에 ‘성북동 비둘기’를 새긴 시판을 붙여놓았다. 시판 위에는 비둘기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몇 그루의 나무와 운동기구가 있으며 한쪽에는 책을 진열한 책 보관소가 있다. 국민대학교와 지역주민이 연계해서 진행한 마을 축제 ‘월월축제 2009’의 행사 가운데 하나로 이 공원을 지금의 모습으로 꾸몄다. 공원이 있는 자리가 김광섭 시인과 직접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성북동에 살았던 김광섭 시인과 그의 시 ‘성북동 비둘기’가 있었기 때문에 비둘기공원이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비둘기공원에 걸려 있는 시를 읽고 돌아선다. 겨울 해가 짧아 골목길에 어둠이 일찍 내린다. 어두워지는 골목에 저녁밥 짓는 냄새가 흐르고, 창문으로 불빛이 샌다. 불빛이 따듯해 보인다. 돌아가 쉴 수 있는 저 방의 불빛은 누군가에게는 별빛이 아닐까?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성북동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노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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