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외로움의 도시와 ‘서울시간은행’

등록 : 2022-05-12 15:11
지난 2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간은행 시범사업 참여기관 대표들이 ‘시간을 나누어 행복을 더하다’라는 구호를 들고 발대식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광범위한 휴대전화의 보급과 인공위성을 포함한 유무선 통신망의 확충,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의 성장으로 범지구적 연결이 바야흐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반면 시공을 뛰어넘는 초연결 시대가 도래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각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2018년 영국에 ‘고독부’가 정부 부처로 설치됐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서울의 전체 398만 가구(인구 총 960만 명) 중 1인 가구는 총 139만 가구로 35%를 차지한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155만 명으로 16.2%에 이르고, 혼자 사는 60살 이상 1인 가구는 35만 명을 넘어섰다. 개인적 고립과 소외가 심화할 우려가 크고 사회적 돌봄이 필요할 수 있는 구성원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 도시정책 지표조사에 따르면,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서울시민이 21.8%에 이르는 것이 우리의 우울한 현실이다.

인간관계의 고립화와 단절, 가족을 포함한 기존 공동체 질서의 해체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부산물이자 현대 사회의 공통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사회로의 강요’는 고립과 단절을 가속화했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사회복지 개념과 기준선, 전달 체계 등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제도 신설이나 예산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 부담이 커져간다는 점에서 시민과 공동체의 자율성에 기반한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도시 공동체의 회복으로 당면한 과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시도는 국내외적으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에드거 칸 박사가 창시하고 3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시간은행(타임뱅크)이다. 아직 실험적 단계로 공통된 원칙과 방식을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모두의 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기치를 걸고 ‘자주적 인간과 호혜적 상호주의에 기반한 공동체 재구축’을 지향하는 시민운동이다.

시간은행은 타인과 사회를 위한 공익적 활동과 호혜적 활동에 제공한 시간만큼 시간화폐(타임페이)를 받아 적립하고, 적립된 시간화폐로 필요한 도움을 본인이 직접 받거나 제삼자에게 기부할 수 있고, 별도로 지정된 시간화폐 사용처에서 사용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다.

서울시가 시간은행에 주목하는 것도 기존의 단순한 ‘시혜적 복지’ 확충만으로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고 장기적으로 공동체의 재정적 부담 등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참가자들이 ‘시혜자이자 수혜자’가 되는 시간은행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 참여 확대-인간 관계망 확충-상호 신뢰 증진’이라는 프로세스도 중요하다. 이런 과정이 서울이라는 초거대 도시의 ‘인간적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사회적 자본 형성과 도시 운영 시스템 향상’의 토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서울에도 대표적 수혜 계층으로만 인식되는 노인과 장애인이 지역 공헌 사업의 주체로 참여한 (사)타임뱅크 코리아, 대학생과 지역 상인들 간의 상생 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국민대 산학협력단, 지역 특성 기반의 쌍방향 참여 모델을 고민하는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등이 이러한 활동의 씨앗들을 뿌리고 가꾸어오고 있다. 서울시가 이들과 함께 시작하는 서울시간은행 사업이 ‘호혜적 상생도시 서울’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원로가수 윤복희의 대표곡이자 10여 년 전 임재범이 다시 불러 화제가 됐던 가요 ‘여러분’의 마지막 가사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여러분!”

이원목ㅣ서울특별시 시민협력국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