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해방촌 ‘심야 책방’ 산책

오래된 동네의 비탈진 골목길 한켠에서 만나는 주인 닮은 책과 공간들

등록 : 2016-07-29 11:08 수정 : 2016-07-29 11:11
해방촌 동네서점 고요서사의 밤 풍경. 오래된 동네 해방촌에 들어서기 시작한 동네서점들이 여름밤 해방촌을 여행하는 이들을 위해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심야까지 책방 문을 열고 있다.
걷다가 문득 어둠이 쏟아지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항로를 잃은 선장처럼 도시를 떠돌다가, 빛의 실마리를 찾아 다시 한번 키를 움켜잡는다. 북극성 같은 남산타워를 찍고 용산동 방향으로 걸음을 틀면, 해방촌 언덕 자락에서 등대처럼 신호를 보내는 작은 책방들이 보인다. 여름밤, 열꽃으로 헤매는 우리가 향할 곳이다. 용산구 용산동 2가, 일명 ‘해방촌’ 자락에 젊은이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건 근래의 일. 예닐곱 평 남짓한 공간에 빼곡히 채워 넣은 책 풍경은 동네 특유의 오랜 시간을 품어 그 간판만으로도 아련한 정취를 준다. 문학전문서점 ‘고요서사’, 복합문화서점 ‘별책부록’,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그리고 8월 초 문 열 준비를 하는 방송인 노홍철의 ‘철든책방’까지. 총 네 개의 책방이 오밀조밀 모여 우애를 쌓고 있다.

오후 일곱 시 안팎으로 문을 닫는 서점 사정상, 퇴근 후 찾아왔다가 탄식하며 돌아가던 손님들에게 미안했다고, 책방 대표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아쉬움에서 가볍게 시작해 본 연합 프로젝트가 ‘해방촌 심야 책방’이다. 지난 6월부터 시작해, 한 달에 한 번 자정까지 문을 열고 밤손님을 맞는다. 소문을 듣고 해 저문 마을을 천천히 올랐다. 고양이들의 안내를 받으며 책방을 산책했다. 빛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서점 편집자’가 운영하는 문학전문서점

고요서사

고요서사

길가에 앉아 단정하게 불을 밝힌 서점. ‘고요서사’의 창가는 벌써 두 손님이 차지해 읽기에 열중이다. 해가 저물자 출입문 옆에 ‘심야 책방’ 간판이 걸리고, 본격적으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퇴근 후 찾아온 두 여성, 동네 공방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 근방 대학에서 놀러 온 학생들 모두 상그리아(포도주에 소다수와 레몬즙을 넣어 희석한 술) 한 잔씩 들고 신이 났다. 소곤소곤 저들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고요서사’의 차경희 대표는 자신을 ‘서점 편집자’라고 했다. 책 편집하듯 서가를 편집하고, 책방을 편집해 가는 즐거움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2015년 10월 중순경 ‘서울 같지 않은 서울’ 느낌에 반해 해방촌에 입주한 뒤, 문학전문서점 ‘고요서사’ 간판을 올렸다. 재밌는 이야기책 한 권은 사람의 폭과 깊이를 얼마나 숙성시키던가. 소설을 읽는다는 건 분명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글맛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밤 10시 정각부터 본격적인 ‘책 놀이’를 진행한다. 손님들의 위트와 순발력에 매번 놀라고 있으며, 8월의 심야 책방 행사 역시 소정의 상품을 놓고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 8월 중 고전 추리소설과 와인모임 등 행사를 준비 중이며 블로그에서 수시로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주소: 용산구 신흥로15길 18-4 (102호)

운영: 매일 12:00~20:00 / 화요일 휴무/ 변동 시 공지

블로그: blog.naver.com/goyo_bookshop

책과 음악과 고양이들의 위안

별책부록

별책부록

인적 드문 주택가 비탈길. 조명이 번져 나오는 가게 하나가 저 멀리 희미하다. 먼저 온 날씬한 길고양이들의 경계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책방에 들어선다. 음악과 공기가 단번에 바뀐다.

“…저기 다들 집은 가까우세요?” 손님들에게 조심히 말을 건네는 남자는 ‘별책부록’의 차승현 대표다. 책 외에도 음반과 디자인 소품 등 별별 물건들을 파는 책방 ‘별책부록’은 2015년 가을, 해방촌에 입주했다. 입소문을 타고 방문하는 단골손님들이 주 고객이다.

‘심야 책방’의 영업시간이면 밤 열 시가 넘도록 사람들이 이어진다. 채비 가벼운 여성들이 많다. 책장 앞에서 저마다 보폭만큼 영역을 잡고 무심한 생각에 잠겨 있다. 레코드판이 돌고 돈다. ‘베사메 무초’라든가 ‘퀸사퀸사퀸사’ 하는 선율과 책장 넘기는 스르륵 소리가 어우러진다.

배치하는 책의 기준이 엄격하지 않다. 차 대표의 취향 따라 크게 문화예술, 디자인, 건축 등의 책으로 색깔을 맞추고 있다. 중고 책도 팔고 지인들이나 서점에서 위탁받아 사기도 한다. 대표의 말에 따르면 서점을 찾는 젊은층들이 요즘 공간과 운용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최근 들어온 책 중 <모든 이의 집>(서해문집)을 더불어 소개했다.

주소: 용산구 용산동 2가 1-184

전화: 070-5103-0341

운영: 매일 14:00~19:00 / 월요일 휴무

블로그: blog.naver.com/byeolcheck

위트 발랄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스토리지북앤필름

2012년부터 충무로에서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하다가 2013년 겨울 해방촌에 입주한 강영규 대표는 ‘모든 게 우연’이었다고 회상한다. 시골 같은 동네 풍경을 간직한 장소를 찾아 이화동, 원남동, 원서동 등 이름난 동네는 다 걸어 봤는데, 우연히 친구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다 발견한 해방촌이 본인의 상상과 잘 맞아떨어지더라나. 바로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전에는 은행원이었다. 당시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책방을 꾸려 이틀만이라도 직접 돌볼 정도로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많았다. 해방촌으로 오면서 아예 전업해 버렸는데, ‘책방 주인이 된 후 삶의 질과 시간적 여유가 좋아졌다’며 강 대표는 흐뭇해했다.

인근 책방 주인들에게 ‘해방촌 심야 책방’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도 참 가벼운 마음이었다. 소문만 듣다가 직접 온 사람들이 늦은 시각까지 머물며 좋다고 말씀해 주시니까 강 대표 역시 즐겁다. 이처럼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검열과 경계 없이 소개하는 일을 늘 하고 싶었다. 최근 들어온 책 중 정채원 작가의 <엄마의 편지>가 그 예다.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엄마의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책인데, 이런 일상의 소소한 기록을 참 좋아한다.

주소: 용산구 용산동 2가 1-701

운영: 매일 13:00~19:00 / 휴무 공지

블로그: www.storagebookandfilm.com

해방촌 심야 책방 산책법

• 해방촌 심야 책방은 매월 첫째 주 수요일에 유연하게 문을 연다. 8월3일 예정된 심야 책방 행사는 사정상 ‘고요서사’만 참가한다. 심야 책방 프로그램은 아직 정례화돼 있지 않다. 책방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각 책방 블로그를 확인하는 게 헛걸음을 피하는 법이다.

• 자가용 운전 시 해방촌 공용주차장 이용 권장, 대중교통 이용 시 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2번 이용.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심야 책방

북티크(BOOKTIQUE)

‘책과 사람들을 위한 도심 속 아지트’ 콘셉트의 심야 책방

서교점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459-13 원방빌딩 1층 전화: (02)6204-4772 운영: 주중 9:00~23:00 / 주말 10:00~23:00

논현점 주소: 강남구 학동로 105 지하 1층 전화:(02)6204-4774 운영: 주중 9:00~10:00 / 주말10:00~20:00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다산북스에서 운영하는 북카페 겸 책방. 24시간 운영. 주소: 마포구 서교동 395-27 전화: 070-4820-4811 운영: 8:00~1:30(다음 날) / 연중무휴

글·사진 전현주 문화창작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