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순댓국 한 그릇에 듬뿍 담긴 ‘이웃사랑’

성북구 정릉2동 소상공인 나눔모임 ‘다솜복지회’ 윤영덕·이성식·최경순씨

등록 : 2021-04-01 16:01
2018년부터 매달 회비 10만원씩 내

홀몸노인 등 소외이웃 100여 명에게

매달 한 끼 대접…먹거리 기부 연계도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인사에 뿌듯”

3월24일 성북구 정릉2동 아리랑시장에 있는 ‘아리랑순대국‘ 앞에서 다솜복지회의 윤영덕 회장(오른쪽부터)과 이성식·최경순 회원이 인터뷰 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솜복지회는 동네 소상공인 7명이 2018년 만든 나눔 모임으로, 4년째 회비를 모아 매달 어르신 100명에게 순댓국 한 그릇을 대접해오고 있다.

성북구 정릉의 ‘아리랑순대국’은 동네의 홀몸노인 등 소외 이웃 100여 명이 매달 와서 한 끼 먹고 가는 넉넉한 곳이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대신 이웃 주민이 포장해 가서 전해줄 수도 있다.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김치, 깍두기까지 모두 국산 재료를 써서 직접 삶고 담근다. 단골도 꽤 있고, 정릉 아리랑시장 길에선 ‘맛집’으로 통한다. 식당 앞쪽 유리엔 ‘나눔을 실천하는 다솜복지회(다솜) 사업장’이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3월24일 늦은 오후 아리랑순대국에서 다솜복지회 회장 윤영덕(58)씨와 회원 이성식씨(57), 최경순(50)씨를 만났다. 이들은 “작은 나눔 활동하면서 내세우는 것 같아 쑥스럽다”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눴으면 좋겠다”고 인터뷰에 응했다.

윤 회장은 동네 토박이다. 오랫동안 남대문시장에서 의류업을 하다가 지금은 정릉동에서 양초 제조업을 한다. 이씨는 30년 전 정릉2동으로 이사를 왔다. 직장을 다니다 2004년 동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최씨는 아리랑순대국을 운영한다. 4년 전 아리랑시장 길에 5평 남짓한 작은 가게를 빌려 개업했다.


세 사람은 성북경찰서 청소년육성회원으로 만나 활동하다가 2018년 ‘다솜복지회’를 만들었다. ‘다솜’은 애틋하게 아낀다는 순우리말인데 이웃 사랑 마음을 담아 지었다. 윤 회장과 같은 양초 제조업을 하는 김범중씨도 함께했다. 이들은 이전에도 어버이날 등 기념일에 맞춰 동네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곤 했다. 하지만 한 해 두세 차례 행사 때만 해서 늘 아쉬웠다. 윤 회장은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자’고 뜻을 모아 시작했다”고 했다.

네 사람과 함께 자원순환센터(고물상)를 하는 유재희씨 부부, 포클레인 사업을 하는 이승호씨도 회원으로 참여했다. 모두 60~70대다. 당시 우왕명 정릉2파출소장도 참여했다. 2년 전 우 소장이 전근으로 탈퇴하면서 현재 회원은 7명이다. 다솜 회원들은 매달 10만원씩 회비를 낸다. 회비는 어르신 음식값으로 거의 쓴다. 회원들끼리 모임을 할 때는 돈을 따로 나눠 낸다.

다솜의 활동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기부 연계도 이뤄졌다. 정릉시장에서 청년식당 ‘문간’을 운영하는 이문수 신부가 쌀, 반찬 등 기부물품을 나눠준다. 무엇보다 회원인 최씨가 직접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큰 힘이다. “어르신이 드시는 순댓국 값은 30% 정도 할인받고 있다”고 윤 회장이 전했다. 그는 나눔 활동 1년이 될 무렵 다솜 사업장이라는 걸 알리는 스티커를 만들어 회원들 가게에 붙였다. 이씨는 웃으면서 “좋은 일 하는 곳이라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다솜 회원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오래 살고 생업을 꾸리다 보니 동네에서 누가 어려운지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회원들이 어르신을 만나 다솜복지회에 대해 알려준다. 현재 어르신 100여 명에게 명함을 나눠줬다. 어르신들은 순댓국집을 찾아 명함을 내고 포장을 해 간다. 하루 5~10명 정도 바쁜 식사시간을 피해 조금 여유 있는 시간에 찾는다. 최씨는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며 가끔 사탕이나 과일을 주고 가는 어르신도 있다”고 전한다. 그는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말을 들으면 너무 뿌듯하다”고 했다.

나누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회원들 대부분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어서 다달이 회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도 있다. 윤 회장의 양초 가게는 납품하는 곳이 주로 종교시설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 영향으로 매출이 줄었다. 이씨의 부동산 중개소 역시 거래 성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데 덜 쓰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최씨는 “(돈이) 있어서 나눔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라며 “넉넉하지 않아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중·고등학생 3명을 홀로 키우는 그는 “애들이 (엄마의 나눔 활동을) 좋아해 주말엔 식당에 와서 도와주기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더 많은 어르신에게 음식 대접을 할 수 없는 것이 회원 모두가 늘 아쉬워하는 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회원으로 들어올 것을 권하는데, 회비를 계속 내야 하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고 윤 회장은 말했다. 그는 “꾸준히 하면 함께하는 회원이 늘지 않겠냐”며 “우리의 작은 나눔 활동이 선한 영향력으로 퍼져 따뜻한 동네가 되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