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우리’

티베트 노래 속 ‘옹헤야’, 민족의 연대의식 일깨우다

길 위에서 만난 ‘우리’ ③ 중국 칭하이성에서 들었던 ‘옹헤야’와 ‘얄리 얄리 얄라셩’의 기억

등록 : 2021-02-18 14:31 수정 : 2021-04-15 17:08
칭하이호수에서 들었던 티베트 민요엔

‘옹헤야’라는 단어 똑똑히 살아 있어

고대 한때 한민족-티베트 교류 있었나

중세 아랍 학자 ‘집단 연대’ 개념 떠올라

2016년 여름 간쑤성 장예에서 남쪽에 있는 칭하이성 성도 시닝까지 고속열차로 이동했다. 티베트인은 중국 대륙 서쪽 시짱자치구(티베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윈난성 북부나 칭하이성에도 티베트인이 선주민으로 많이 살고 있다.

칭하이성 동북쪽에는 어마어마한 호수가 있다. 바로 칭하이호이다. 이 칭하이호에서 티베트 전통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필자는 티베트의 신명(神明)과 한(恨)을 느껴보려고 유심히 노랫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칭하이호 바로 앞 천막 안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티베트 전통 오색천.


티베트 사람들이 준 술을 마셨다. 약간의 고산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몇 잔을 들이켜니 저녁의 쌀쌀한 날씨에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한창 노랫소리에 흥에 겨워 장단을 맞추는데, 동행한 중국어 선생이 “티베트인 노래에 ‘옹헤야’라는 말이 계속 나와요”라고 말했다. 함께한 한국인들은 그 누구도 티베트어를 모르니 정확히 알 수 없어 “발음이 비슷한 것이겠죠”라고 답했다.

“아니에요. 들어보세요. 계속 ‘옹헤야’ 하는 소리를 하잖아요. 우리 민요에 나오는 그 옹헤야 아닌가요?”

중국어 선생은 강하게 도리질하며 노랫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노래에 집중하자 정말 필자의 귀에도 노래에서 ‘옹헤야’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그저 비슷한 발음이 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심히 들어보니 분명 ‘옹헤야’였다. 경상도 민요의 ‘옹헤야’와는 가락이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가사만은 분명히 옹헤야를 읊어대고 있었다. 아주 느리면서 흥이 나도록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티베트 춤.

‘옹헤야’라는 단어가 있는 티베트 전통 노래를 열창하는 티베트 청년.

노래가 다 끝난 뒤 노래를 부른 청년과 술을 한잔하면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티베트인, 중국어 선생, 그리고 노래를 한 티베트인과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옹헤야’는 티베트어였다. ‘길상(吉祥)이 될 것이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뜻을 가진다고 했다. 필자는 한국에도 ‘옹헤야’라는 민요가 있다며, 간단히 곡조를 불러주었다. 오히려 티베트 사람들이 더 신기해했다. 언제 티베트어를 배웠냐고 하는 이까지 있었다. 티베트인들은 또 필자가 부른 농부가에도 정말 흥겨워했다. 그날 밤은 티베트인들이 캠프파이어까지 준비해줘서 칭하이호에서 환한 달이 뜬 밤을 멋지게 보낼 수 있었다.

칭하이호수와 유채꽃밭. 하늘과 산, 호수 그리고 유채꽃이 잘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다음날 아침 일찍 또 다른 티베트 청년이 우리를 깨우더니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난리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유목민 텐트에서 잠을 잔 탓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티베트 청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산에 올랐다. 산에서 해돋이를 보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다시 차를 타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잠이 몰려왔다.

그때 티베트 청년이 카세트테이프로 아주 시끄럽고 빠른 티베트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그 전날 밤 ‘옹헤야 사건’과 비슷한 일을 또 겪게 됐다. 이번에는 ‘얄리 얄리 얄라셩’이었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그 어구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별곡은 20세기에 와서 붙인 가락이다. 티베트 청년이 들려준 노래는 전통 민요는 아닌 것 같고 현대적인 노래인 듯했다. 그래서 물었다. “‘얄리 얄리’는 무슨 뜻입니까?” 티베트 청년은 단어의 뜻은 없고 흥겨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윈난성에 갔을 때인데 현지 가이드가 티베트 장족 여성이었다. 그래서 장난 삼아 함께 동행한 한국인에게 “저 티베트인에게 가서 얄리 얄리 얄라셩이라고 한번 말해보라”고 시켰다. 티베트 사람이 놀라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언제 자신들의 말을 배웠냐고 신기해한다. 물론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에서 만난 티베트 청년은 그 단어를 몰랐다.

티베트인은 ‘단결’로 유명하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신장자치구의 위구르족이나 시짱자치구의 티베트족이 중국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저항감이 드세기 때문에 골치 아플지 모른다. 하지만 티베트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나라를 세우고 그들의 땅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칭하이호수 인근 티베트 마을. 장족부락이라 쓰여 있다.

그들의 ‘연대 단결 정신’을 보면서 중세 이슬람의 역사가·사상가인 이븐 할둔(1332~1406)의 말이 떠올랐다. 최초의 세계사라 불리는 <이바르의 책>을 쓴 이 튀니지의 역사가는 <이바르의 책> 권두에 붙인 ‘무깟디마’(역사서설)에서 ‘아사비야’라는 개념을 중요시했다. ‘아사비야’는 ‘집단의 연대’를 뜻하는 베르베르어이다. 그는 많은 민족과 부족이 흥망을 거듭하지만, 살아남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집단의 중심엔 공통적으로 ‘아사비야’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중심으로 많은 민족과 부족의 역사를 탐구하며 내린 결론이다.

우리는 서구의 역사철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나 ‘E.H.카’, ‘베네딕트 앤더슨’에 의존해서, 또는 중국 역사학자 ‘구제강’(고힐강·1893~1980)에 의존해서 우리 과거를 보려 한다. 그러나 아사비야, 즉 집단적 연대 의식은 오히려 한민족에 대한 지난한 투쟁 과정을 보여준 개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븐 할둔은 한국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한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에게 걸맞은 역사철학적 접근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타자 지배의 기억을 가지고 팽창주의적 유전자를 담지한 집단의 ‘실증성’이나 ‘자기중심적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타자 배려와 타자 관계의 동등성을 시대정신으로 하는 21세기에는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모든 집단, 부족, 민족, 인종들이 상호 호혜에 기초한 글로벌 사회를 지향한다면 먼저 각 집단의 자기 정체성 확립이 요청된다. 자신을 모르면서 남과 어찌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서양의 논리 동양의 마음>의 저자 박동환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서양과 중국의 철학사와 달리 제3의 집단들을 언급한다. 서양철학사나 중국철학사가 아닌 또 다른 생각의 역사를 가진 집단들의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수많은 집단의 자기 운동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무당들이 신탁을 내리던 신전 앞에 쓰인 경구를 패러디 했듯이 우리도 이에 맞는 패러디가 필요한 듯하다.

필자는 지금도 ‘옹헤야’와 ‘얄리 얄리 얄라셩’이라는 두 단어를 생각하면서 먼 과거로 상상의 여행을 하곤 한다. 어쩌면 아사비야가 강했던 한민족과 티베트 민족이 먼 옛날 북방의 초원지대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문화 교류’를 해왔는지 모른다. 아니면 수많은 단어 중에서 우연히 발음이 같은 단어를 발견한 것이었을까? 어쨌든 ‘옹헤야’와 ‘얄리 얄리 얄라셩’은 필자에게는 서양과 중국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많은 민족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텐트 앞에 선 필자. 오른쪽은 전통 유르트.

글·사진 장운 자발적 우리 흔적 답사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