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추위가 숲을 때려도 나무는 북풍 앞에 늠름하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⑯ 강북구 오래된 나무와 마을 숲

등록 : 2021-01-14 16:49 수정 : 2021-04-15 17:20
영하의 겨울 숲, 추울수록 싱그럽고

찬 바람 대숲 흔들어 일렁이게 해도

깊은 숲속 새소리, 여전히 명랑하다

동네 할머니들 눈만 내놓은 옷 입고

나무 아래 또 모인다, 마치 텃새 같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날에도 사람들은 솔밭근린공원 울창한 소나무 숲을 찾는다. 대학 진학에 고심하는 엄마와 딸을 위로하는 건 솔숲일 것이다. 눈만 내놓은 차림으로 북서울꿈의숲 햇살 고인 동산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은 오랜 세월 숲을 지켜온 텃새 같다. 산비탈 마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오패산에는 지금도 마을과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가 이어진다. 우이동 골짜기 봉황각의 향나무는 아픔보다 강한 생명력으로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강북구의 마을 숲과 오래된 나무를 돌아봤다.

북서울꿈의숲 창녕위궁재사. 마당의 소나무와 집을 에워싼 대숲이 싱그럽다.

일렁이는 대숲, 자작나무 마당, 전망 좋은 솔숲, 북서울꿈의숲


겨울 숲은 추울수록 싱그럽다. 최저기온 영하 19도를 기록한 날 북서울꿈의숲은 싱그러웠다.

북서울꿈의숲 시내버스 정류장에 내려 횡단보도 초록불을 기다리며 바라본 하늘에 빈 가지 우뚝 솟은 나무가 보였다. 한때 보호수로 지정됐던 느티나무다. 병을 앓고 있어 보호수에서 지정 해제됐고, 그 상태를 관찰하는 중이다. 아프지만 혹독한 겨울 북풍 앞에서 늠름하다.

북서울꿈의숲 방문자센터를 지나 조선 순조 임금의 딸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의 제사를 지내던 창녕위궁재사로 가는 길, 눈만 내놓은 차림새로 동산 아래 의자에 앉은 할머니들이 겨울 숲을 지키는 텃새처럼 햇볕을 쬐며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들을 비추는 햇볕이 한파 속에서도 풍요롭다.

코로나19 때문에 창녕위궁재사 문이 닫혔다. 담장 밖에서 바라본 마당에 늘 푸른 가지 퍼뜨린 소나무가 깃을 펼친 한옥 기와지붕과 어울려 자란다. 바람에 대숲이 일렁이고, 아까부터 들리던 새소리는 여전히 명랑하다.

얼어붙은 월영지에 눈이 쌓였다. 연못가 겨울나무 그림자가 빙판 위 눈밭에 선명하다.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올라 선회하며 앉는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내려서면 자작나무가 있는 초화원이다. 흰 빛줄기가 땅에 박힌 듯 서 있는 자작나무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왔던 길로 다시 접어든다.

산등성이 숲길을 걷는다. 이정표는 꿈의숲아트센터. 키 큰 소나무가 둥근 마당을 에워싼 풍경을 지나 꿈의숲아트센터 뒤로 이어지는 길을 따른다. 전망대 건물을 지나 오패산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른다. 정상에서 내려와 정자가 있는 전망 좋은 곳에 도착했다. 키 작은 소나무 가지 아래를 지나 정자 앞 전망 데크에 선다. 관악산, 남산, 북한산, 도봉산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본다. 길은 출발했던 곳으로 이어진다.

오패산 숲길.

오패산 산신제가 전해지는 오패산 마을 숲

북서울꿈의숲 버스정류장에서 강북09 마을버스를 타고 주공5단지 정류장에서 내렸다. 길 건너편 산으로 들어가는 오현로31길로 걷는다. 길이 끝나고 숲길이 시작되는 곳에 정자가 있다. 이 마을에서 50년 넘게 산 사람을 거기서 만났다. 그와 함께 산길을 걸으며 오패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오패산은 이곳부터 지금의 북서울꿈의숲까지 이어졌는데, 산 중간에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산이 나뉘었다고 한다. 주택가 북쪽은 오패산으로 남았고, 남쪽에는 1987년 놀이동산인 드림랜드가 들어섰으며, 2009년 북서울꿈의숲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산은 예로부터 오패산 또는 벽오산으로 불렸다. 다른 자료에는 오패산과 벽오산이 다른 산이라고 나오는데, 산은 하나인데 이름이 여러 개인 경우로 보는 게 옳다. 그 또한 오래전부터 북서울꿈의숲까지 아울러 오패산이라 했다고 한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오패산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들었다며 오패산 산신제 얘기를 꺼냈다. 벌리(현재 번동의 옛 이름)는 중벌리와 윗벌리로 나뉘었는데, 그가 사는 마을은 중벌리다. 중벌리 오패산 산신제는 예로부터 음력 10월 초하루에 지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액운을 막고 주민 안녕과 화합, 농사의 풍년을 빌었다. 그의 아버지도 산신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몰랐다고 한다. 산신제의 역사는 대를 이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다. 지금도 산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그 중심에 그가 있다. 2003년까지 지금 산신제를 지내는 곳 바로 위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때는 비석도 제단도 없었고 가마니를 깔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2004년 지금의 자리를 마련했다. 제사를 지낼 막걸리를 직접 담가 제단 옆 땅에 하루 동안 묻어 두는 것이 특징이다.

산신제를 지내는 곳에서 그와 헤어졌다. 잣나무 숲을 지나 능선 숲길을 따라 걷는다. 숲길 밖으로 집들이 보인다. 산비탈 마을이다. 한파 속에서도 숲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 정상 작은 마당에 운동기구가 놓였다. 운동하는 사람들, 햇볕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오패산은 마을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마을 숲이다.

솔밭근린공원 소나무 숲.

솔밭공원 솔숲과 봉황각 향나무 두 그루

다음날도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추위는 계속됐다. 강북구 남쪽 오패산 일대에 이어 강북구 북쪽 우이동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화계사였다. 시내버스 151번 화계사 입구·한신대학교대학원 정류장에서 내려 화계사로 가는 길, 135년 된 느티나무가 마중하듯 길가에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계사 일주문이 보였다. 겨울나무 가지가 엉킨 계곡에 눈이 쌓였다. 계곡과 절 마당을 나누는 담장 안 대적광전 3층 처마 층층이 기와마다 고드름이 반짝인다. 455년 된 느티나무가 그 앞에 서서 반짝이는 겨울을 지켜본다. 그보다 조금 어린 449년 된 느티나무는 계곡에 서서 담장 안을 들여다본다. 고려시대 창건했다는 화계사의 역사보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시주를 받아 중창했다는 대웅전보다, 보물로 지정된 화계사 동종보다, 그 풍경에 마음이 더 간다. 꽃과 계곡물과 그 속에 자리 잡은 절이 아름답다는 화계사 신월선사의 옛이야기가 이 겨울 나뭇가지 눈꽃과 겨울 계곡과 숲에 들어앉은 절 풍경에 얹힌다.

151번 버스를 타고 덕성여대입구 정류장에 내려서 길 건너 솔밭근린공원에 도착했다. 도로 가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 일부러 소나무를 심은 게 아니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소나무 숲을 서울시와 강북구가 사서 가꾸고 2004년에 솔밭근린공원으로 개장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소나무 숲길을 지나는 아줌마는 오늘 저녁 밥상에 잡채를 올릴 생각인가 보다. 장바구니 위로 당면 봉지가 삐죽 나왔다. 수능 정시 지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엄마와 딸을 응원하는 건 소나무 숲에 가득한 솔향일 것이다. 햇볕 가득한 곳에 앉아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배경이 돼주는 건 늘 푸른 소나무들이다.

소나무 숲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우이동 종점에 내려 마지막 목적지인 봉황각을 찾아갔다. 봉황각은 천도교 제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 일제에 맞서 조국의 광복과 국권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1912년 세운 천도교 시설이다. 손병희 선생도 이곳에서 7년 동안 지냈다.

봉황각 마당 한쪽에 향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한 그루는 곧게 뻗었고 다른 한 그루는 구불거리며 자랐다. 봉황각 관계자도 누가 언제 심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가 50여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도 그 나무들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두 나무는 병들어 20% 정도만 살아있다고 한다. 병색보다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 나무 옆에 서서 봉황각 기와지붕 뒤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가 우뚝 솟아 기개가 높다.

봉황각에 있는 향나무 두 그루.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