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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맥주 한잔하실래요?” 일단 말을 붙여 보세요

아버지와 소통에 어려움 겪는 30대 초반 남성 “가족이지만 누구보다 대하기 싫어”

등록 : 2016-07-14 14:34 수정 : 2016-07-14 14:36
 
Q) 저는 30대 초반 남성입니다. 저는 부자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아버지와 정치 견해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얼굴을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최근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굳히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습니다. 의견 대립이 점점 심해져 언제 폭발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러려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집에서 거의 대화가 없고, 식사 시간에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디 숨을 데도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가족이지만 누구보다도 대하기 싫은 관계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자문을 구합니다.  

A) 얼마 전에 만났던 한 대기업 고문의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고문으로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제 질문에 그분은 일종의 ‘통역사’ 역할이라고 답했습니다. 오너인 회장과 임직원 사이에 전혀 소통이 안 돼, 중간에서 다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임원회의가 끝나면 모두들 오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저마다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한국말로 이뤄진 회의건만 말뜻을 설명해 주지 않으면 엉뚱하게 해석하고 그 상황이 점점 더 심화되는 답답한 관계입니다. 이 정도면 조직 소통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 기업에서 더 큰 문제는 회장과 사장의 관계라고 합니다. 회장은 아버지, 사장은 아들인데, 두 사람 사이 대화가 거의 없고 경영 방식도 완전히 달라, 직원들로서는 죽을 맛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최근 중소기업을 하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다른 일을 접고 입사한 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회사 생활 몇 달 소감이 어떠냐는 제 질문에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숨이 콱콱 막힙니다. 사회에서는 그렇게 자상한 분인데, 저에게만큼은 가혹할 정도로 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회사 내부에서 제가 느낀 것을 짧게 말씀이라도 드릴라치면, “네가 벌써 뭘 안다고 그래?”라는 면박으로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저는 아예 입을 닫고 삽니다. 아버지 행동이 바뀌길 기대하기보다는 단지 제 의견을 경청해 주길 원했고, 어쩌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에게 너무도 차갑게 대하는 아버지를 보고 차라리 아버지 회사에 들어오지 말고 다른 직장을 다닐걸 하고 후회도 합니다.”

아마도 이 경우는 경영 수업을 위한 가혹한 수련 과정의 하나라고 해석됩니다. 그동안 바깥에서 지내던 아들이 가업을 잇기 위해 들어온 만큼 과거처럼 자유분방하게 지내는 모습에 따끔히 경종을 울리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경영자로서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그리고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냉정하게 체득하라는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엠비에이(MBA, 전문 경영인 양성 과정) 코스라고 할까요? 아들에게 마냥 온정을 베풀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악역을 감당해야만 하는 남모를 고충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이전처럼 단순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 관계는 많은 집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030 자녀와 5060 아버지 사이의 소통이 특히 그렇습니다. 심각한 동맥경화 수준이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아들은 성인으로 성장하고 아버지의 힘은 예전만 못하면서 빚어지는 ‘권력 이동’(파워 시프트) 현상입니다.

최근 한 통계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대화와 소통의 창구로 친구를 가장 많이 꼽았고, 그다음으로는 어머니, 세 번째는 배우자, 그 뒤를 이어 직장동료, 자녀, 이웃 순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상위 랭킹에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딸보다 아들들이 아버지와 대화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대화가 단절된 그룹이 바로 2030 자녀와 5060 아버지 사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상담을 요청하신 분만의 문제는 아닌 셈이지요. 이 통계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점차 딸의 권리가 커지는 사회 상황으로 볼 때, 장인 사위 관계도 못지않은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부자 관계가 서먹서먹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주된 원인은 대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려고만 할 뿐,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나도 다 알아. 네가 말하는 뜻은 알겠는데 말야….”  이러면서 중간에 자르고 들어오는 장면은 흔히 목격됩니다. 일방적이고 훈계하는 태도에 아들의 마음은 닫혀 버립니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태도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통은 어디까지나 양방향이니까요. 아버지들이 제일 발끈하는 것은 아들의 이런 발언이 나올 때입니다.

“아버지와 우리 세대는 달라요. 바뀐 것을 아셔야죠!”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듯, 아버지도 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할지도 모릅니다. 인정이란 여러 가지 의미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고 싶은 경우도 있고, 가정을 위해, 아들을 위해 피눈물 날 정도로 헌신해 온 지난 인생에 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후자가 강할 겁니다.

‘나의 방식’을 먼저 바꿔 보세요

아버지가 바뀌면 좋겠지만, 우선 아버지와 대화하는 자신의 방식도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고 따질 계제는 아니니까요. 그냥 대화하기 어렵다면 “아버지, 맥주 한잔 사드릴게요! 저랑 집 앞에서 치맥 하실까요?”라고 해 보세요. 그것만으로 마음속의 단단했던 것들이 조금씩 녹을 겁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아들은 언제나 어릴 때 뒤에서 자전거 잡아 주었던, 위태위태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맥주잔을 기울이며 아들이 어느 사이 이렇게 컸나 하고 아버지는 흐뭇해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아들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책망할 겁니다. 이럴 때 마시는 소주나 맥주는 윤활유입니다. 우선 아버지에게 갖고 있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그다음에 자신이 고민했던 것들을 하나둘 털어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간절하다면 내가 먼저 바꿔 보는 겁니다. 저에게도 20대 아들 둘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두 녀석에게서 이런 말이 들려올 것이 분명해, 몹시 주저하며 이 글을 씁니다. “아빠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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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대표이사·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