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자 맞춤형 도시재생을 챙기자

기고 ㅣ 배웅규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

등록 : 2020-10-22 15:32

아침 출근길. 라디오 진행자의 멘트가 기억을 소환했다. 어릴 적 동네 경양식집에 갔을 때 종업원이 “빵으로 줄까요? 밥으로 줄까요?”라고 묻자 “반찬(돈가스) 더 주세요”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했다.

경양식이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일화처럼 ‘도시재생’도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접하면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 전면 철거 방식의 도시개발 사업에 익숙한 현실에서 도시와 재생의 연계라는 방식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경양식에 적응했듯 맛을 보고 경험하다 보면 이내 더 나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일상의 법칙은 도시가 주는 다양한 매력 중 하나다. 수많은 매력을 되살리고 만들어 지속하는 게 도시재생이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은 전체 도시관리 면적(182㎢)의 16.1%에 불과하고, 생활기반시설이 부족한 쇠퇴 주거지는 여전히 많다. 그러나 예산과 행정 부담이 큰 활성화 지역 지정만으로 재생 효과를 확산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도시재생사업이 성과가 없다는 목소리가 있다. 집수리로 낡은 주택과 골목의 외관이 바뀌었지만 기반시설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생사업이 구역당 100억~200억원 예산인 데 비해 훨씬 작은 면적의 정비사업은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인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과정을 달리해 과거 전면 철거의 도시정비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높아진 삶의 질 요구에 적극 대응해 도시 활성화 기반을 마련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특히 ‘토지 등 소유자’와 같이 토지, 건축물 등을 소유한 주민의 개발 이익만을 중시하는 정비사업 논리에서 탈피해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민의 삶의 가치, 장소의 가치 등을 놓고 공공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은 추후 반드시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도시재생은 더 많은 참여를 전제로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재생사업은 마중물사업과 연계사업의 시너지로 작동한다. 그런데 마중물사업비는 전체 대상지 면적이나 토지 가격에 비해 부족하고, 연계사업은 다양하나 실질적 연계 고리가 약한 실정이다. 게다가 실질적 주택정비가 어렵고, 소규모 정비사업 시행에도 한계가 많다. 이를 위해 체감효과를 목표로 실행 중심으로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실질적 주택정비가 가능하도록 좁은 골목과 소규모 필지가 밀집한 곳에 건축이 가능하도록 관련 건축규제 완화와 함께 전향적 개선이 요구된다. 아울러 저층 주거지 내 다수 분포하는 낡은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에 대한 재생도 시급하다. 이들 주택은 단독주택과 달라 한두 집이 참여하지 않으면 재생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만연해 있다. 또 민간개발 시 기부채납을 인근 재생지역에 유도해 주차장 등 공공시설, 도로정비 등 주민 수요가 높은 시설을 유치하고 민간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상생형 재생 모델 도입도 필요하다.


아울러 도시재생은 주거지재생이라는 선입견도 바뀌어야 한다. 도시재생은 서울역 일대나 창동·상계, 세운상가, 광화문 일대, 북촌·서촌과 같은 한옥마을, 홍릉 일대 등에서 매우 다양하게 경제기반형, 중심시가지형, 주거지지원형이라는 분류 체계로 우리 일상과 가까이 있다. 주거지재생의 경우 2010년대 초반 주민 갈등, 사업성 부족 등으로 정비사업이 불가한 매우 열악한 주거 지역을 대상으로 시작된 주거지지원형으로 그 일부에 불과하다.

도시의 재생은 긴 호흡이다. 단기간에 성과가 없다는 것은 재생의 시간으로 보면 다르다. 우선 제도적 한계 때문에 재생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현실은 바꿔야 한다. 지금 중앙정부가 실거주자의 요구에 부응해 과감하고 전향적인 제도 개선에 나설 적기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가족과 이웃에 대한 소중함이 되살아나 우리 동네의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를 위해 재생사업도 나와 이웃이 나서면 실행될 수 있는 실질적 주거환경 개선 수단으로 발전해야 한다. 도시재생이 지향하는 사람과 장소의 가치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필수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선도 지역인 창신2동 회오리길에 있는 지상 3층의 주민공동이용시설 ‘회오리 마당’.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