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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평 대지 위 5층 건물이 사랑받는 이유…‘틈새건축’의 새 실험

등록 : 2020-10-15 15:36 수정 : 2021-01-22 16:57
서울시 건축상 ‘틈새건축’ 부문 신설…브릭웰·중림창고·세로로 등 수상

상생·소통·친환경 등 점점 참신해지는 국내 건축 경향 그대로 반영

왼쪽부터 협소주택 ‘세로로’(Seroro), 통의동 문화공간 ‘브릭웰’(Brickwell),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

브릭웰, 내부 4층까지 원통형 중정 만들어 주변과 ‘교감’


세로로, 1930년대 폐가의 근사한 변신

중림창고, 누구나 실내 드나들기 쉬워

‘사회 문제 해결의 키 될 수 있어’ 주목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지난해 3월 이곳 33㎡(10평) 땅에 눈길을 끄는 5층 흰색 건물이 들어섰다. 건축가 최민욱씨가 아내 정아영씨를 위해 지은 협소주택 ‘세로로’(Seroro)다.

이 협소주택은 설립 당시 크기와 비용 측면에서 화제가 됐다. 원래 지붕이 무너진 폐가가 있던 곳이어서 선뜻 나서는 매입자가 없었다고 한다.

복잡한 건축법규를 적용하고 나면 실거주 공간 최대치가 약 16.5㎡(5평)인 작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신축이 어렵다고 보는 편이지만 최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방치된 땅이어서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다. 한양도성을 바로 옆에 둔 매력적인 땅을 평당 1천만원에 살 수 있었다”며 “덕분에 건축비를 절약해 약 3억원에 협소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1층 주차장, 2층 서재 겸 작업실, 3층 주방과 거실, 4층은 침실, 5층은 옷방과 욕실로 구성된 총 20평짜리 집으로 재탄생했다.

아파트처럼 가로로 살던 방식을 세로로 바꿔 사는 것에 어려움은 없을까. 최씨는 “아내와 고민하며 동선에 맞게 층마다 용도를 정했다. 낮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는 2~3층을 사용하고 저녁에는 침실과 욕실이 있는 4~5층을 사용하는 식”이라며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집이지만 별다른 불편함 없이 수직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두 개 면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집 근처 한양도성의 나무와 마을 정경이 한눈에 들어와 좁은 집에서 느끼는 공간적 답답함도 해소된다.

협소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준 ‘세로로’를 환영한 건 비단 이들 부부뿐만이 아니다. 동네 어귀에 있던 1930년대에 지어진 폐가가 근사한 주택으로 변하자 동네 사람들도 반겼다고 한다. 못 쓰는 땅인 줄 알았던 한 자투리 공간이 일으킨 긍정적인 변화다. 그 결과 ‘세로로’는 ‘2020 서울시 건축상’ 틈새건축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틈새건축’(Architecture in Between)은 ‘세로로’의 사례처럼 기존에 잘 다루지 않았던 틈새, 자투리 공간을 새롭게 활용하는 건축을 뜻한다. 서울시는 틈새건축을 주제로 한 ‘2020 서울건축문화제’를 16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한다. ‘랜드마크’(대표적인 상징물) 건축뿐만 아니라 서울시민 삶의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주거, 공간 등 다양한 분야에 주목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지난 5월 공모를 시작한 ‘2020 서울시 건축상’의 시상식은 16일 서울건축문화제 개막행사에서 열린다. 김성보 주택건축본부장은 “특히 올해는 서울건축문화제 주제인 ‘틈새건축’ 부문의 신설로 도시 서울과 서울시민 삶의 모습을 담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건축 문화를 나누고자 했다”며 “‘서울시 건축상’이 시민 일상에 건축 문화가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틈새건축을 언급할 때 올해 초 종로구 통의동에 들어선 4층 건물 ‘브릭웰’(Brickwell)을 빼놓을 수 없다. 건축사사무소 ‘SOA’(강예린·이치훈·박영서)가 설계한 이 건물은 원형 건물이라는 독특한 조형미로 등장부터 건축계의 주목을 받으며 ‘2020 서울시 건축상’ 틈새건축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우선 건축 미학적으로 보면 1900년 프랑스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 ‘프티팔레’(Petit Palais)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 프티팔레는 독특한 내부 설계로 유명하다. 궁궐의 외관을 가진 건물로 들어서면 내부에서 뜻밖의 정원을 맞닥뜨리게 되어서다.

‘브릭웰’이 선사하는 뜻밖의 경험은 좀더 특별하다. 사유지지만 필로티(벽 대신 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구조)를 띄워 4층까지 지름 10.5m의 원통형 아트리움(중정)을 만들었다. 1층에는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야광나무, 털부처꽃 등을 심었다. 연못 주변을 걷다 고개를 들면 원형의 하늘이 보인다. 공공건물도 아닌데 사유지의 절반 가까운 넓이를 비워내 주변 골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백미는 이 정원이 서쪽에 있는 백송 터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백송 터는 1962년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가 1990년 태풍으로 고사한 백송(白松)이 있던 자리다. 건축가 이치훈씨는 “백송과 연계된 작은 정원을 구상했고 그 결과 행인들이 오가는 ‘공공 정원’ 성격의 산책로가 됐다”고 말했다.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 토지개발 이득을 바라지 않고 만들었다고 한다.


통의동 ‘브릭웰’(Brickwell).

브릭웰이 있는 통의동은 촘촘히 작은 건물

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약 3m 너비로 차 한 대조차 통과하기 빠듯한 골목은 그동안 인접한 주택에서 주차 공간으로 활용했지만 1층 절반을 정원으로 ‘비워낸’ 브릭웰이 들어서면서 답답했던 골목이 활기를 띠게 됐다. 인공적인 건축물이지만 자연과도 소통한다. 1층 정원에 길고양이들이 찾아와서 물을 먹고 가거나 3층 외벽을 둘러싼 2~3㎝ 틈이있는 특수 제작된 벽돌 사이로 참새들이 집을 짓고 산다. 건물 틈새를 비워냄으로써 비롯된 상생의 건축 미학이다.

이처럼 나 홀로 건축미를 뽐내지 않고 주변과 조화를 추구한 브릭웰의 ‘헌신’에 시민도 반응했다. 전문가 심사와는 별도로 실시한 시민 투표에서 노들섬, 국립항공박물관과 함께 ‘2020 서울시 건축상’ 시민공감특별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브릭웰과 함께 ‘2020 서울시 건축상’ 틈새 건축 부문 최우수상을 공동 수상한 ‘중림창고’(중구 서소문로6길 33)도 시민과 소통하는 맥락에서 지어진 건물이다.

1971년 이 근처에 성요셉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로가 생겼고, 도로 한편으로 있던 좁은 자투리땅을 시장 상인들이 창고로 사용한 것이 50년 전 일이다. 시장-상가-아파트가 흥망성쇠를 같이하는 과정에서 들어선 중림창고는 실내를 누구나 드나들기 쉽게 디자인한 게 특징이다. 골목을 다 같이 거실처럼 사용했던 주민들 모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길가를 향해 열린 문을 통해 사람들이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있고, 안에 있던 사람들도 행인에게 손짓하며 말을 건네는 풍경이 연출된다. 좁은 골목에 들어선 이 창고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이유다.

설계자인 강정은 에브리아키텍츠 대표는 “길고 좁고 높은 대지의 지형적 특징과 어떤 용도로 활용되더라도 수용 가능한 건물로 만들기 위해 동선을 고려한 계단 사용과 개방감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세로로, 브릭웰, 중림창고 등 올해 서울시건축상 틈새건축 부문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작들은 서울건축문화제 누리집(www.saf.kr)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근 경기도 화성시 송동의 동탄2 호수공원에 들어서게 될 공영주차장이 화제가 됐다. 호숫가 금싸라기 땅(면적 3510㎡)에 공영주차장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경관을 해칠까 우려하는 시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화성도시공사가 주관한 설계공모전에서 건축사사무소 ‘UIA’(위진복)의 ‘산책자들, 아치로 공원을 만나다’가 당선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사각 모형 주차장 건물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 에펠탑처럼 아치형의 철골 조형물로 만들어진 공영주차장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주변 경관을 가리지 않기 위해 구조공학자와 협업해 디자인한 결과 기둥 없이 뻥 뚫린 아치의 길이가 50~80m에 달한다. 총 325대 차를 주차할 수 있으면서도 시원하게 뚫린 아치형 구조를 통해 바로 앞 호수를 조망하고 산책도 할 수 있다. 기존의 건축 방식에서 벗어난 틈새 전략 덕분에 기피시설로 분류됐던 주차장이 자연과 상생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생전에 “위대한 시대에는 새로운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건축에 있다”고 말했다. 틈새 공간을 활용해 주택난을 해소하고 답답한 골목에는 열린 정원과 개방된 문화공간을 만들거나, 자연을 해치지 않는 공공시설을 위해 구조공학과 협업하기도 한다. 국내 건축계에도 르코르뷔지에가 강조한 ‘새로운 정신’이 일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