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90초 영화의 매직, 지하철을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다

17일까지 ‘제11회 국제지하철영화제’…서울 지하철에서 본선 진출 단편영화 상영

등록 : 2020-09-03 16:25
세계 58개국에서 출품된 1천여 편 중

본선 진출작 55편을 선정해 상영중

코로나 소재에 ‘격리’ 다룬 작품 많아

시민 온라인 투표 통해 최종 5편 결정

배우 황보람씨, 문유강씨의 재능기부를 받은 영화 ‘최고의 시’ 촬영 현장.

서울 지하철에서 90초 동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제11회 서울교통공사 국제지하철영화제(SMIFF, Seoul Metro International subway Film Festival)의 본선 경쟁이 그것. 이 행사는 지난 8월24일에 시작해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2009년부터 해마다 열려 올해 11번째를 맞이하는 이번 국제지하철영화제는 ‘90초, 지하철을 즐겨라!’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무성 상영이 가능한 90초 분량의 초단편 영화들이 지하철 역사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바르셀로나 도시교통공사’(TM), ‘바르셀로나 영화제’(Subtravelling)와 협력하는 아시아 최초의 지하철 영화축제이기도 한 이번 국제지하철영화제의 수상자에게는 총 1300만원 상당의 상금과 상품이 수여된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지하철·버스·트램 등에서도 동시 상영되는 기회를 얻는다. 신인 감독이라면 국제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다.

그래서일까. 이번 국제지하철영화제의 출품작 수는 역대 최고치로 집계됐다. 공모 기간(5월13일~7월1일) 동안 총 58개국 1075편에 이르는 작품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출품 국가 수에서는 4개국, 작품 수에서는 4편이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와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미디어실 김병철 지하철영화제 담당관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한 상황에서 오히려 국제지하철영화제 출품작 수는 늘었다”며 “안전상 우려로 영화관을 찾지 못하는 시민을 위해 창작자들이 지하철에서만큼이라도 예술을 선사하고픈 마음이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접수된 영화 작품 중 엄정한 전문가 심사를 거친 55편(국제경쟁 25편, 국내경쟁 15편, 특별경쟁 15편)이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됐다.

여기서 특별경쟁은 국제·국내경쟁 부문 본선에 오르지 못한 작품 중 전문가들이 추천한 작품을 별도 영역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번 심사에는 아르겔리치 바르셀로나 지하철영화제 프로그래머, 아다 카마라 코펜하겐 영화제 디렉터 등 영화 전문가 5인(심사위원)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국제지하철영화제의 국제경쟁 부문은 바르셀로나 지하철영화제인 서브트래블링, 코페하겐의 ‘식스티세컨드’(60second)와 협력해 선정작을 결정했다.

올해 선정작은 코로나19 사태를 다룬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국제지하철영화제 관계자들은 “코로나19로 ‘격리’라는 말이 일상화된 결과”라며 “이번 영화제 선정작을 통해 우리 모두 주변을 돌아보고, 이웃과 소통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예로 ‘돈워리’는 코로나19 확산에도 지하철은 걱정 없다는 내용을, ‘보이지 않는 방패’는 열차 방역에 힘쓰는 지하철 직원들을,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깝게’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된 지하철과 사람들 이야기를 다뤘다.

국내경쟁작은 오직 지하철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들만 대상이 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영화에서 지하철이 극중 인물들의 꿈, 사랑, 나눔, 추억, 여행과 인생의 공간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사실상 지하철이 주인공인 독특한 작품들이다.

이밖에도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그래서일까. 몇몇 출품작에서는 마스크로 인한 거리감과 소통의 극복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변해버린 우리 일상과 적응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어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방역 등을 재치있게 소개하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국제경쟁 작품의 경우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가상공간에서만 소통해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 만남의 소중함을 알리는 작품에서부터, 쓰러졌던 나무들이 다시 일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환경 영화까지 소통과 회복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았다.

이밖에도 이번 국제지하철영화제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은 또 뭐가 있을까. 국제지하철영화제 관계자들은 “‘E-CUT 프로젝트’를 주목해달라고 말한다. E-CUT 프로젝트는 서울교통공사가 지난해부터 신진 영화감독 육성·발굴과 브랜드 가치 향상을 위해 유명 배우의 재능기부를 받아 서울지하철 소재의 단편영화(5분 내외 분량)를 제작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에는 배우 이윤지씨의 재능기부를 받아 손희송 감독이 ‘지하철 속 오디션’이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당시 촬영을 위해 서울지하철 수서차량기지에서 3호선 신조전동차 1편성이 3일 밤낮으로 동원돼 화제가 됐다.

이번에는 배우 황보람씨, 문유강씨의 재능기부를 받은 영화 ‘최고의 시’(감독 임정훈)가 독바위역에서 촬영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승강장 안전문(PSD)에 등재된 자신의 시(詩)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주인공 2명이 어느 쪽이 더 훌륭한 작품인지를 두고 논쟁하는 가운데 점점 지하철 막차시간이 다가온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 ‘최고의 시’를 비롯한 본선 진출작은 국제지하철영화제 기간(8월24일~9월17일)에 열차 내 행선안내게시기, 역사 내 상시 상영 모니터, SMIFF 누리집 온라인 상영관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수상작은 시민의 온라인 투표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시상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을 위해 온라인 실시간 중계로 대체될 예정이다. 본선 상영작과 마찬가지로 영화제 공식 누리집(www.smiff.kr)을 통해 송출한다.

이에 대해 정선인 서울교통공사 미디어실장은 “올해 11주년을 맞은 서울교통공사 국제지하철영화제에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감사하다. 높은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이 초단편영화를 감상하면서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라는 장르는 시대상을 빠르게 반영하는 문화 소재다. 90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메시지와 화면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시국을 살고 있나 진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 김병철 지하철영화제 담당관은 “서울 시민이 오며 가며 이용하는 지하철 객실 안에서 잠깐이라도 행선안내게시기를 바라봐달라”며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퇴근길에 평생 잊지 못할 인생 작품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