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공시생 성지 노량진 컵밥거리 ‘깔끔’ 진화

동작구, 2억9천만원 들여 컵밥거리 환경 개선

등록 : 2020-07-02 16:56 수정 : 2020-07-03 14:12
쿨링포그, 야간 조명, 쉼터 2곳 설치

여름 열섬현상 없애고 미세먼지 줄여

상인 “너무 좋아지고 환해져서 따봉”

수험생, “혼자인데도 외로움 덜 느껴”

공시생들이 6월26일 오후 점심을 먹으러 동작구 노량진동 컵밥거리로 나왔다. 동작구가 이날 새로 설치한 쿨 링포그를 시험 가동해 공시생들 머리 위로 물안개가 퍼지고 있다.

“여기는 수험생이 대부분이라서 다들 혼자 밥을 먹잖아요. 삭막할 수 있는데, 쿨링포그도 나오고 하면 덜 외로울 것 같아요. 밤에 등불 켜는 것도 좋아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강나리(가명·22)씨는 “처음에는 이곳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굉장히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며 “밤에 지나갈 때는 밝게 등불이 켜져 있어 좋아진 것 같고 수험생들이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줘서 시험을 준비하는 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6월26일 오후, 동작구 노량진동 컵밥거리는 장맛비가 내리던 전날과 달리 후텁지근했다. 동작구는 이날 컵밥거리에 설치한 쿨링포그를 5분 동안 시험 가동했다. 컵밥거리 위로 ‘하얀 물안개’가 뿜어져 나와 더위를 잠시 식혀주는 듯했다.


동작구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이용객 불편을 줄이기 위해 지난 6월 노량진 컵밥거리 환경을 개선했다. 구는 2억9천만원을 들여 쿨링포그와 야간 조명을 새롭게 설치하고, 맑은 공기 쉼터도 2곳 만들었다.

박상민 동작구 가로행정과 가로관리팀 주무관은 “열섬현상과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는 쿨링포그를 설치하고 수험생과 주민들이 쾌적하게 식사하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고 했다.

구가 길이 100m가량 되는 컵밥거리에 설치한 쿨링포그는 20μm 크기의 물 분자를 안개 형태로 내뿜는다. 이에 따라 도로와 인체는 젖지 않고 주위 온도를 3~5℃ 낮춰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와 오존 농도를 낮춰준다. 구는 주위 기온이 28℃ 이상이거나 미세먼지가 ‘나쁨’ 이상일 때 등 기상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쿨링포그를 운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당분간 쿨링포그 가동을 자제하고 있다.

박 주무관은 “깨끗한 직수(일반 수돗물)를 사용하는 쿨링포그는 사람이 맞아도 인체에 해가 없고, 여름철에 맞으면 시원한 느낌을 준다”며 “지금은 코로나19로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가동을 중단하고 있는데, 상황 변화에 따라 가동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했다.

컵밥거리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기대감은 크다. 근처 가게에서 일하는 김지훈(27)씨는 “간편하고 저렴해서 매일 컵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쿨링포그를 가동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야간 조명이 켜진 노량진 컵밥거리 밤 모습. 동작구 제공

동작구가 컵밥거리상인회와 협의해 설치한 600여 개의 발광다이오드(LED) 등은 매일 밤 컵밥거리를 환하게 밝힌다. 전재수 노량진 지역 컵밥거리상인회 지역장은 “레트로(복고풍) 감성이 가득한 거리를 조성해 공부에 지친 수험생과 지역 주민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줄 계획”이라고 했다.

컵밥거리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유경식(28)씨는 “밤에 지나다닐 때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 경관이 더 좋아진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동작구가 컵밥거리 여유 공간에 만든 2.7평 규모의 ‘맑은 공기 쉼터’도 인기다. 아늑하고 쾌적한 느낌의 이곳에는 테이블이 있어 수험생과 주민들 누구나 컵밥을 가지고 와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에어컨과 온풍기를 설치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맑은 공기 쉼터 실내 벽면에는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공기 중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해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와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7월부터 희망일자리를 통해 채용된 2명이 맑은 공기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6월 말까지는 코로나19 여파로 맑은 공기 쉼터를 개방하지 않았다. 박상민 주무관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개방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오후 11시 이후에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동작구는 또한 차도와 접한 컵밥 부스 뒤 벽면을 활용해 컵밥거리를 알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박 주무관은 “검은색인 컵밥 부스 뒷면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시민 의견이 있다”며 “우선 컵밥거리를 상징하는 도안을 만들어 부스 뒷면에 새겨 컵밥거리를 알리는 동시에 미관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구는 무질서하게 들어섰던 노량진 컵밥거리 가게를 2015년 거리가게 상인들과 협의해 새롭게 정비했다. 일반 시민이 안전하게 거리를 다니고, 거리가게 상인은 마음 놓고 영업할 수 있는 ‘상생 거리’로 변화시켰다.

컵밥거리는 점심시간이면 인근 학원가에서 식사하러 나온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붐볐으나, 코로나19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탓인지 이날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전재수 지역장은 “점심때는 공시생이 많고 저녁에는 일반인까지 컵밥을 먹으러 온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점심때만 되면 줄을 서서 먹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했다.

1997년부터 컵밥거리에서 ‘맛나흑미컵밥토스트’ 가게를 운영하는 김신자씨는 “너무 좋아지고 환해져 ‘따봉’이죠”라며 새롭게 바뀐 컵밥거리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김씨는 “밤이 되면 등에 불이 들어와 야간 분위기도 멋있다”며 “코로나가 빨리 물러가 장사가 잘되면 좋겠다”고 했다.

박상민 주무관은 “이번 환경 개선이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여름철 노량진 컵밥거리를 찾는 수험생들과 시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