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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지원 보답, 터키 참전용사 도와”

‘힘내라! 터키’ 마스크 1만장 기부한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 오병열 회장

등록 : 2020-06-25 15:05
코로나로 일감 끊겨 막막한 봉제업체

성북구 30만장 마스크 주문에 숨통

협회, 수익 일부로 국외 자매도시 기부

항균 원단 쓰고 한글 응원문구 새겨

17일 오전 성북구청장실에서 오병열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장(맨 왼쪽)이 터키에 기부하는 마스크 1만 장 전달식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힘내라! 터키.’

17일 오전 성북구청장실 한편에 쌓인 12개 종이상자 겉면에 적힌 문구다. 아래엔 ‘대한민국 성북구의 45만 시민이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합니다’라고 터키어로 쓰여 있다. 이날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가 정성 들여 만든 마스크 1만 장을 에르신 에르친 주한 터키 대사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구청장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행정의 작은 지원이 국경을 넘는 나눔으로 이어져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곁에 선 오병열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구청이 전달식을 성대하게 열어줘 놀랐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달식을 마친 뒤 <서울&> 인터뷰에서 오 회장은 코로나19로 힘들었던 때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성북구 보문동, 장위동, 석관동 등에는 1600여 개 봉제업체가 있다. 그 가운데 300여 곳이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업체 100여 곳도 회원사다.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긴 어려운 시기에 그는 회장직을 맡았다. 회원사 대부분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주문이 취소되거나 이미 준비한 물량까지 수출길이 막히는 등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들 열심히 뛰어다녀봤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가뭄에 단비’ 같은 마스크 제작 주문이 있었다. 성북구를 비롯한 9개 자치구가 참여하는 서울시 동북권 자치구 패션봉제산업발전협의회와 국민안심마스크제작협의회가 손잡고 필터교체형 면마스크 사업을 추진했다. 지역의 봉제업체들이 만들고 공적구매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성북구청은 자체 20만 장, 강서구청의 10만 장을 연결해 협회에 주문했다. 협회 회원사 36곳이 적게는 1주일, 많게는 한 달가량의 일감을 받았다. “멈췄던 미싱을 돌리고 월세도 낼 수 있어 숨통이 트였죠.”

추가적인 일감도 이어졌다. 물량은 많지 않지만, 민간기관의 마스크 주문도 들어왔다. 방역복 임가공 일감도 생겨 활로를 열어주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납품하는 업체의 하청 물량이었다. 방역복을 만드는 작업 공간은 넓고 깨끗해야 하는 등 추가 시설이 필요해 참여할 수 있는 업체는 제한적이었다. 처음 4개 업체에서 현재는 7개 업체가 방역복 임가공을 하고 있고,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급한 불을 끄고 한숨을 돌린 협회 회원들은 성북구청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국민안심마스크 주문으로 생긴 협회 수익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1만 장을 만들어 기부하겠다고 성북구청에 알렸다. 지역 안에서는 어느 정도 마스크를 확보한 상태여서 성북구청은 국외 자매도시로 눈을 돌렸다. 한국전쟁 70주년 의미를 살려 참전국인 터키의 이스탄불시 베이올루구(베요을루구)로 정하고 의향을 물었다. 성북구의회와도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곳이다. 주한 터키대사관에서 금세 환영의 답이 왔다.

협회는 기부의 의미를 잘 살리기 위해 마스크 품질과 디자인에 더 신경을 썼다. 항균 기능이 있는 에어로실버 원단을 사용했다. 케이(K)팝 등 한류 문화 영향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현지 분위기를 파악해 디자인에 한글을 활용했다. 연예인 패션 마스크 모양에 한글로 ‘힘내라! 터키, 대한민국 성북구’와 태극무늬를 새겼다. 색상은 다양하게 흰색, 회색, 검정 3가지로 했다.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에 도움을 청해 포장재엔 터키어로 응원 문구를 넣었다.

마스크는 배로 운송돼 2~3주 뒤에 베이올루구 참전용사와 가족에게 전해진다. 에르친 터키 대사는 오 회장에게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 인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에르친 대사는 “지금은 확진자가 줄고 있지만, 터키에서 누적 확진자는 18만 명에 이른다”며 “터키 정부와 국민은 케이 방역에 놀라워하고 궁금해한다”고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케이 방역 공유와 마스크 기부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40여 년 봉제업을 해온 오 회장은 의식주는 생활의 기본으로 인류가 살아 있는 한 지속한다며 봉제업 전망이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방식, 스마트 장비로의 전환 등 재편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봉제업은 얼마든지 더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패션봉제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조성에 나서준 성북구청에 깊이 감사한다”며 “앞으로 회원들을 위해 더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