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코로나 블루’ 심리상담으로 떨쳐버려요

영등포·관악·구로·성북·강북구 등 서울 자치구들 속속 전문팀 꾸려 심리 방역

등록 : 2020-05-07 14:43
시민들, ‘코로나 낙인’ 대상 될까 두려움

확진자 줄었다고 ‘심리 건강’ 소홀 안돼

각 자치구, 전담요원 두고 지속적 상담

“우울감 있으면 꼭 전문가 상담 받아야”

우은아 영등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전문요원이 4월29일 영등포구보건소에 있는 사무실에서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주민을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트라우마가 한번 형성되면 완전히 소멸하기 쉽지 않죠. 지금도 세월호 관련 트라우마 상담을 계속 진행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은아 영등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전문요원은 4월24일, 최근 지역 감염을 통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심리 지원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완전히 해소돼도 상당 기간 트라우마가 지속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3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종료하고 6일부터 일상생활과 방역이 조화를 이루는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이행한다고 밝혔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명 안팎으로 줄어든데다 지역 감염자가 나오지 않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다.


이처럼 물리적 방역은 완화하고 있지만, 그동안 시행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격리 등으로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호소하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코로나19 심리 상담을 진행하는 한국심리학회는 상담자들의 가장 큰 문제로 감염에 대한 불안(26.8%)을 들었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불안(16.8%), 우울(10.6%),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8.8%), 가족 갈등(5.6%), 경제적인 어려움(5%) 등을 꼽았다.

시민들은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두려움, 격리로 인한 고립감,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우 전문요원은 주민들이 제일 먼저 겪는 ‘불편함’으로 분노와 화를 들었다. 그는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걸 왜 나만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노와 화가 상당하다”며 “이를 들어주고, 이를 통해 겪는 어려움을 찾아 최대한 현실성 있게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확진자, 격리자, 격리해제자 등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더 심해질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우 전문요원은 확진자나 자가격리자가 되면, 낙인이 찍혀 지역 주민들이 자신을 비난할까 무섭고 두렵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정보 공개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좀더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의 자치구들은 주민 심리 안정을 위해 심리 상담과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담을 통해 주민의 마음건강 상태를 살피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고위험군이거나 전문적인 진료가 필요한 상담자는 심리지원센터나 의료기관을 연결해주고, 치료 뒤에도 지속적으로 살핀다.

영등포구는 3월 중순부터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민들에게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구는 주민들에게 재난 정신건강 평가 척도에 따라 우울감을 측정하고 5단계에 걸친 체계적인 심리 상담 지원으로 코로나19로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자가격리자는 주 1~2회 심층 전화 상담을 하고, 상담이 종료된 뒤에도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살핀다.

영등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최근 집중하는 부분은 자가격리자와 원래 심리적으로 취약했거나 우울 증상이 있었는데 자가격리로 증상이 더욱 심각해진 사람이다. 우 전문요원은 “이런 사람이 몇 명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입원하도록 연결해줬고, 어떤 사람은 국가트라우마센터 소속 정신과 의사에게 연결해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관악구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구민들을 위해 4월 중순부터 심리 안정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추경예산을 편성해 심리 전문 상담사를 채용하고, 심리 안정 물품을 제작해 제공하는 등 ‘심리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확진자, 자가격리자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겪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심리 안정과 일상 복귀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구로구는 자가격리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4월13일부터 심리 상담과 ‘격려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심리상담사,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전문요원 등 전문가 10명이 심리 상담을 맡는데, ‘코로나 블루’를 겪는 일반 주민도 상담받을 수 있다.

성북구는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홀몸 노인들을 위해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4월 하순 각종 구호물품과 심리방역에 효과가 있는 콩나물 재배 도구가 담긴 희망상자를 전달했다. 홀몸 노인은 담당 생활지원사와 함께 콩나물을 키워 반찬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기록까지 해 우울감이나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했다.

강북구도 4월 초순부터 격리자와 구민을 대상으로 심리 지원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강북구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과 전문의로 지원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자가격리자는 담당자 지정 뒤 격리 종료 때까지 전화로 심리 상담을 한다. 격리가 끝난 뒤 대상자가 지속적인 도움을 원하면 이후에도 상담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작구는 4월24일부터 동작구정신건강복지센터와 마음건강센터 정신건강전문요원 15명이 코로나19 불안에 대한 심리적 특성과 반응 검사, 심리 안정 콘텐츠와 안정화 기법 영상 제공, 감염예방수칙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 결과, 재난 정신건강 평가 척도에 따라 고위험군으로 진단된 대상자는 국가트라우마센터나 서울시 코비드심리지원단, 기타 지역 정신의료기관에 연결해준다.

우 전문요원은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데,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불특정 다수나 공공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울감 등이 있는 사람은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으라”고 권유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