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펼침’ 철학은 다르지만…남북 모두 부의 원천

홍민의 서울-평양 마주 보기 ① 서울과 평양의 아파트

등록 : 2020-03-19 14:40
남북 모두 아파트를 현대화 증표 여겨

사유·공유 개념 따라 배치·외형 달라져

남, 폐쇄된 블록에 많은 건물 채워 넣기

북, 열린 거리에 조성…누구나 보행 가능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의 ‘서울-평양 마주 보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북한 정치·경제를 두루 다루는 홍 실장은 몇 년째 서울과 평양의 차이점을 찾아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 속에서 다름을 발견해내고, 그 다름을 바탕으로 같음을 지향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골목, 도시재생, 한강과 대동강, 유행, 시장 등 다양한 주제로 서울과 평양의 다름과 같음을 살펴본다.

한강변


도시는 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지향성이 아로새겨진 텍스트다. 서울과 평양만큼 이 지향성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비교 텍스트도 없다. 그러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도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매우 기묘한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남북한 모두 아파트에 기이한 집착을 보여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 마포아파트 단지 준공 현장 연설에서 아파트를 “국가 현대화의 도구이자 대안”이라고 역설한다. 소위 ‘아파트공화국’으로 가는 신호였다.

북한 역시 1960년대부터 경쟁적으로 아파트 건설에 매달렸다. 아파트로 가득 찬 경관은 ‘발전’ 또는 ‘우월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포장됐다. 여기에 ‘속도’가 강조되면서 도시의 경관을 전변시키는 ‘기적’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 아파트는 ‘정치적인 경관’ 또는 ‘통치전략’이다. 서구 일각에선 아파트가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스럽거나 저급한 생활환경의 흔적으로 취급되곤 하지만, 서울과 평양에서는 여전히 ‘부’의 원천이자 권력의 성취물이다. 그래서 서울과 평양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아파트는 서울과 평양의 도시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호다.

대동강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도시 사랑은 각별하다. 2012년 집권 이후 평양에 조성된 거리만 무려 5개다. 창전거리,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거리 조성은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수반한다. 북한은 1992년 이후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사실상 중단했다. 경제난 여파였다. 20여 년 만에 김 위원장이 재개한 것이다.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7년 완공된 여명거리는 1년 만에 조성됐다. 북부 수해 복구가 아니었다면 원래 7개월 완공 계획이었다.

평양시 대성구역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영생탑에 이르는 3㎞, 왕복 8차선 도로, 82·70·55·50·45층의 초고층 아파트 40동과 공공건물 60동이 들어섰다.

조선중앙통신이 완공 전부터 ‘2016년 10대 조선 충격’으로 꼽을 정도였다. 2017년 4월13일 준공식이 열렸다. 사전에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 볼 준비를 하라고 통보됐다.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외신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거리 촬영을 허용한 파격적인 연출이었다. 대북제재를 비웃듯 여명거리는 그렇게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서울 강서구 아파트의 배치

아파트 조성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두 도시의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순화하면 이렇다. 서울은 구획과 면적을 정하고 그 공간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펜스가 쳐지고 아파트 블록이 만들어진다. 그 안으로 단지 공원이나 상가가 들어온다. 출입구에 차단기가 쳐지고 외부의 출입이 통제된다. 주변과 분리된 폐쇄적인 블록 개념이다. 외부 사람은 아파트 내부를 지나갈 수 없어 아파트를 돌아가야 한다.

반면 평양의 아파트는 ‘거리’를 중심으로 조성된다. 거리를 따라 아파트 건물이 배열되고 중간중간 골목길이 놓인다. 펜스나 블록 경계는 없다. 사람들은 건물과 골목 사이로 지나서 갈 수 있다.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건물 사이를 흘러가듯 보행할 수 있다. 거리에 조성되는 건물 입면의 리듬감, 입체감의 표현을 어떻게 강조하느냐에 따라 시기마다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강변과 대동강변에 있는 아파트는 남이나 북이나 모두 사회적 부를 상징한다. 그러나 서울 강서구 아파트의 배치는 채움의 방식인 데 반해 평양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아파트의 배치(사진)는 펼침의 방식으로, 남북의 아파트 배치 방식은 크게 다르다. LH 제공, 구글 어스 갈무리, <한겨레> 자료사진

단순화하면, 서울은 닫힌 방식, 평양은 열린 방식이다. 서울은 면적 중심, 평양은 선과 흐름 중심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발생할까. 공간과 토지에 대한 관점이다. ‘폐쇄적 채움’의 근간에는 소유권 중심의 사고, 자본의 논리가 있다. 서울의 토지와 건축은 지가, 지대 중심으로 사고된다. 단위 면적당 최대 수익을 올리기 위한 차원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꽉꽉 채워 넣어 최대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반면 평양은 토지·건축을 국가가 소유·관리한다. 평양시 도시계획은 최고지도자 승인 사항이다. 지도자의 ‘결심’과 ‘방침’ 없이 불가능하다. 지대 수익의 관점이 아니라 통치자의 정치적 결정이 중요하다. 평양의 거리 조성은 권력이 자신의 통치 성과를 드러내는 ‘무대’다. 그래서 경관 차원에서 도시 입구 처리, 건축선, 입면 스펙터클, 건물 높낮이의 ‘리듬’과 ‘입체성’을 스펙터클하게 살리는 데 역점을 둔다. 가령 미래과학자거리는 입면을 의도적으로 비슷한 높이의 건물 3개, 그보다 높은 건물 1개를 하나의 세트로 구성하는 방식을 반복하여 일종의 ‘율동감’을 부여했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평양시는 ‘수직 고층화’ ‘수평 입체화’ ‘재개발’이 두드러진다. 이런 거리 조성은 시각적 압도감과 쾌감을 준다. 그러나 이런 조성 방식은 통치자의 관점에서 ‘가시성’은 도드라지지만, 일정하게 닫힌 공간으로서 사적 영역은 축소된다. 보행자가 골목으로 스며들거나 채워진 블록 안에서 할 수 있는 오밀조밀한 공간 경험은 부차시된다. 열린 공간에서 개인이 안주할 공간이 정작 사라지는 것이다. 시각적인 조망, 기념비적 효과, 웅장한 연출 속에서 거주민과 보행자의 경험은 이들 거대 오브제 속에 압도당한다.

결국 스케일의 문제다. 통치자가 바라보는 도시 스케일은 있으나 정작 휴먼 스케일의 배려가 부족하다. 사실 김 위원장의 도시 스케일은 시장 스케일과 함께한다. 김 위원장의 통치 코드는 ‘문명화’ ‘도시건설’ ‘이동성’이다. 2012년 등장한 ‘사회주의 문명화’는 김정은 정권 ‘건설정치’를 상징하는 모토다. 김정은 시대에 건설은 곧 “국력과 문명의 높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척도”(2016년 신년사)다. 사회주의 문명화론과 건설정치는 시장화를 촉진하며 도시의 이동을 한층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시켰다. 시장화는 도시 내외부를 연결하는 이동성, 즉 인간·상품·화폐·정보·기술의 네트워크와 흐름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 도시는 하나의 시장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김 위원장의 건설정치, 도시 사랑은 이를 배경으로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