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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청년들’에게 열린 일본 취업의 문

등록 : 2020-02-06 14:35
도전하는 청년 세 명의 일본 기업 취업 성공 좌담회

특성화고·지방대 출신·전문대 졸업 예정자 분투기

역경을 딛고 일본 기업 취업에 성공한 이신호(29·왼쪽부터), 오윤석(25), 함종혁(31)씨가 지난 1월16일 마포구 공덕동 사옥에 모여 좌담회를 열기 전 각자 자신의 취업 성공 비결 열쇳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보와 노력’을 제시한 이씨는 소품으로 일본 사회를 더 잘 알자는 의미에서 <일본사 인물사전>을 골랐으며, 오씨는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며 ‘도전과 자신감’을 내세웠다. 언어·기술을 제시한 함씨는 일본어 사전인 <국어대사전>을 소품으로 골랐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특성화고 졸업자, 지방대학 출신 취업준비생, 전문대학 졸업 예정자….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일본 기업 취업에 성공해 오는 4월 입사를 기다리는 한국 청년 세 명의 스펙이다. 한국 기준에서도 취업하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 청년은 좌절을 몰랐다.

지난 1월1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서울& 사무실에 모여 일본 취업 성공기를 주제로 좌담했다. 지난해 말 통계청의 청년고용률(15~29살 인구 중 취업률) 43.5%의 수치에서 나타나듯 극심한 취업난을 보이는 한국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뚫고 일본 기업에 취업한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정보·노력, 도전·자신감, 언어·기술이 이들이 제시한 취업 성공의 키워드였다.

참석자 중 한 명인 함종혁(31)씨는 지방대학을 9년 만에 졸업하고 2018년 2월 교육 콘텐츠 제작 회사에 취업했다. 웹사이트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취업했으나 11개월 만인 그해 말 여러 명이 함께 권고사직을 당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1년간 국내의 다른 회사 20여 군데에 원서를 냈으나 서류조차 통과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닌 경험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데 학교를 쭉 다닌 사람들에 비해 떨어졌어요.” 2009년 충남 서산시에 있는 한서대 통신공학과에 입학한 함씨는 휴학을 3년간 하고 대학을 중도 포기하려고 하는 등 방황의 대학 시절을 보냈다.

“학교가 만족스럽지 않아 편입 시험을 준비했으나 문턱이 높아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대학을 중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대학을 나와야 할 것 같아 복학하고 학과도 컴퓨터공학과로 전과해 9년 만에 졸업했어요.”


국내 취업이 여의치 않자 그는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외국에 나가보자”며 방향을 일본으로 틀었다. 2019년 3월 한국무역협회 산하 무역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에 등록해 그해 12월까지 일본어와 정보통신(IT) 관련 기술을 배웠다. 처음 일본어에 접한 그는 ‘히라가나’부터 익혔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서 일하기 때문에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언어가 생각보다 쉽게 늘지 않았다”고 토로한 함씨는 자신의 일본어 수준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말 일본 도쿄에 있는 정보통신 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다. 한국인 염종순(58) 대표가 20년 전 창업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이다. 직원이 10여 명인 작은 회사지만 한국의 앞선 스마티시티와 전자정부 등을 일본에 소개하고 일본 정부와 민간 기업에 이식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하는 탄탄한 기업이다.

일본어도 충분하지 않은 함씨의 합격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일본에서 일하고자 하는 열정이 강하게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코엑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이루어진 임원 면접 때 “이 일, 저 일을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다. 기술도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싶다”며 적극적인 의욕을 나타내고 회사 쪽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함씨와 함께 같은 회사에 합격한 이신호(29)씨는 일본행 준비 기간이 다른 2명에 비해 긴 편이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2014년 지방의 한 공사에 취업해 울릉도 지사에서 주민회관·복지센터 등 건축물의 전기 쪽 업무를 맡았다. 4년간 근무하다 2017년 12월 본인의 의사로 퇴사했다고 한다. 울릉도 지사의 일이 끝나서 포항이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었지만 평소 관심이 있던 일본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자친구가 일본 기업에 취직해 근무 중인 것도 그의 일본행을 재촉한 요인이었다. 2018년 3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라면집에서 ‘알바’를 하면서 틈틈이 일본어를 익혔다.

다른 업종보다 정보통신 분야가 일본 내 취업이 용이하다고 판단한 그는 2019년 1월 귀국해 3월 고용노동부 산하 경북직업훈련학교 앱 개발 양성 과정을 다녔다. 10개월간 공부한 끝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은 불합격했지만 디자인·포토샵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일본어능력시험(JLPT) 2급도 합격했다. 일본 텔레비전의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일본어 실력이 향상됐다.

이씨는 인터넷 학점은행제로 운영되는 중앙대 원격평생교육원에 등록해 올 2월 경영학 학사로 졸업할 예정이다. 그는 합격 비결에 대해 “일본에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 대화 형식의 면접 과정에서 잘 전달된 듯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기업 취업의 키워드로 ‘정보와 노력’을 제시했다. 1차 면접 전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에 대한 신문기사와 유튜브 내용을 검색해봤다는 그는 “염 대표님이 정말 많은 활동을 했더라구요. 일단 대표를 믿고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취업 성공 키워드는 정보·노력, 도전·자신감, 언어·기술

함종혁 “일본 취업 열정 강하게 전달돼”

이신호 “일본에서 알바하며 일본어 익혀”

오윤석 “인력공단 일본 취업 강좌 들어”

좌담회 멤버 중 가장 어린 오윤석(25)씨는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전문대학인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3학년생으로 이달 졸업 예정이다. 대림대학교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공동으로 펼친 6개월 과정의 일본 취업 프로그램 ‘케이무브’(K-MOVE)가 일본 취업의 디딤돌이었다.

면접 과정을 거쳐 12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된 오씨는 학교 수업 뒤 오후 6~9시 일본어 수업을 듣고 취업에 필요한 어학 실력을 쌓았다. 막연하게 국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영어보다는 일본어가 잘 들리고 흥미가 있던 차에 ‘케이무브’에 응모했다. 여름방학 때 가나자와세이료단기대에서 진행한 4주간 연수는 오씨에게 결정적인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전자우편 작성법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익힐 정도로 적극성을 발휘했다. “일본 학생들과 교류하다보니 일본 사람에게 이메일 보내는 법이 우리와 다르게 딱딱하고 격식 있더라구요. 안부와 내용, 소속 등 견본 틀을 익히려고 노력했어요.”

지난해 10월 말~11월 초 일본 가나자와세이료단기대 학생 7명이 대림대학에 단기연수를 오자, 그보다 몇 달 전인 지난해 여름방학 때 가나자와세이료대학에 연수 갔던 오윤석씨(맨 뒷줄 오른쪽 넷째) 등 대림대 학생들이 환영 모임에 나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나자와세이료단기대학 누리집 제공

일본어 실력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정도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담당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연수 뒤 해당 교수가 전자우편을 보내 “가나자와의 기업 중 호쿠토라는 교량·수문 등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관심 있느냐고 물어와 ‘관심 있다’고 하자 그쪽 회사와 연결해줘 취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차 면접 때 “자동차를 전공했는데 왜 우리 회사를 지원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교량·크레인 같은 것은 자동차와 같은 메커니즘 계열 아니냐.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좋게 봐준 것 같다고 오씨는 말했다. 일본 기업 취업의 키워드로 ‘도전과 자신감’을 꼽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에게 취업 기업을 소개한 가나자와세이료대학 교수가 “나한테 다가온 학생은 (연수생 12명 중) 3명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어 실력은 나보다 더 나은 친구도 있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다가갔고, 일본 학생들에게도 저의 호기심을 풀려고 제안도 많이 했다”고 오씨는 말했다.

말 설고 물선 미지의 세계 취업을 앞둔 심정은 어떨까?

오씨는 “불안감이 기대감보다 더 크다”고 솔직히 말했다. 새로운 환경과 지역에 사는 것이라 불안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곳에 나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기에 기대감도 있다고 오씨는 말했다. 함씨는 “일본행을 앞두고 가장 큰 걱정은 월세예요. 한국과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준비해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 취업이 더 쉬운 일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오씨는 “한국 기업에도 원서를 내서 1·2차 합격을 한 곳이 있고, 일본 기업도 떨어진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함씨는 “한국에서도 대기업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처럼, 일본에서도 엔티티(NTT) 같은 대기업에 한국인이 들어가기 어렵다”라며 일본어라는 요인까지 고려하면 한국 취업보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일본의 정보통신 관련 기업 초봉은 한국보다 오히려 낮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일 관계도 일본 취업자들에게 걱정거리는 아닌지 물어봤다.

“한-일 관계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부 간 대립은 계속되어도 민간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주장만 할 수 없잖아요?”(함종혁)

함씨와 이씨를 신입사원으로 채용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의 염종순 대표는 지난해 11월 취업박람회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기업 취업준비생과 우리 정부의 ‘준비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최근 ‘재팬드림’을 꿈꾸며 중국이나 베트남 그리고 미얀마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각국의 일류 대학을 졸업한 유능한 인재들이 전문기술이나 일본어 구사 능력 향상 등에 대해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 일본땅을 밟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염 대표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염 대표는 “한국 젊은이의 최고 경쟁력은 다름 아닌 세계 최고 정보화 선진국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해온 경험들”이라며 “유엔 등이 격년제로 실시하는 세계 전자정부 랭킹에서 줄곧 1위를 지켜왔고, 세계 도시 전자정부 랭킹에서도 서울시가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보화가 뒤처져 있으며 정보화 사회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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