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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문화 알리는 길동무 될게요”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 윤용기·강성희·김은경씨

등록 : 2020-01-09 14:42
기초지자체 최초 관광공사 교육 수료

‘경단녀·’ 전역 군인 등 다채로운 이력

관광공사 통합예약시스템 이용 가능

관광 자원 개발·활성화 기대 효과 커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인 윤용기(왼쪽부터), 강성희, 김은경씨가 지난해 12월27일 강서구 마곡동 겸재정선미술관 3층에서 겸재가 양천(현 강서구) 현령으로 재임할 당시 양천현아 모형을 보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계상정거도>, 이 그림이 천원짜리 지폐에 있는 그림입니다. 34억원에 낙찰됐죠.”(윤용기 문화관광해설사)

“도산서원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그렸다는데, 어디라고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강성희 문화관광해설사)

지난해 12월27일 강서구 마곡동 겸재정선미술관에서 만난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 윤용기(61)씨와 강성희(45)씨는 미술관 2층에 있는 ‘겸재 정선의 그림 이야기’ 소개란에 있는 <계상정거도>를 보고 이렇게 운을 뗐다. 윤씨는 “자세히 보면 노인이 있는데, 퇴계 이황 선생이란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계상정거도>는 보물 585호 <퇴우이선생진적첩>에 실린 그림 중 한 폭으로 겸재 정선이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그 주변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계상정거는 ‘시냇물가에서 고요히 지낸다’는 뜻이다.

이날 만난 윤씨와 강씨, 그리고 김은경(56)씨는 서울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최초로 한국관광공사의 문화관광해설사 교육 과정을 수료한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들이다. 강서구는 지난해 4월 마곡지구, 서울식물원, 문화 유적지를 연계한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문화관광 해설을 하기 위해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를 공개 모집했다. 8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예비역 대령, 해외 대학 강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선발됐다.

이들은 3개월간 한국관광공사의 위탁교육 과정과 강서구 실무수습 과정을 거쳐, 지난해 11월 최종 10명이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가 됐다. 이들은 지난해 7월2일부터 16일까지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온라인 교육도 6월25일부터 7월11일까지 별도로 받았다. 모두 100시간의 온오프 교육과정을 마친 뒤, 3개월 동안 100시간의 현장 실습도 통과했다. 강서구청은 기초지자체 소속으로 한국관광공사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 해설사가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살려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하게 됐어요.”

김은경씨는 2002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 얼마 전까지 도쿄에 있는 메지로대에서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쳤다. 김씨는 “4년 전부터 한-일 관계가 악화할 조짐을 보여, 일본 생활이 힘들어질 듯해서 2018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강성희씨는 자녀 양육을 위해 15년간 근무해오던 관광공사 면세점을 그만둔 ‘경단녀’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라 “재밌겠다” 싶어서 지원서를 냈다. 그는 “서류 면접 합격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고 했다.

“해설사 역할에 따라서 전체 분위기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죠. 딱딱하기보다는 재밌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 유적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10명 중에서 유일한 ‘청일점’인 윤용기씨는 육군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다 몇 년 전 대령으로 예편했다. 윤씨는 “국가의 보호 아래 살아왔는데 퇴직하고도 국가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아내의 권유로 지원하게 됐다”며 “후학들에게 잃어버린 민족성을 일깨워주는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구는 관광 역량을 강화해 한국관광공사 예약 시스템에 강서문화투어도 제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기존 강서문화투어는 정규 교육 과정을 수료하지 않은 마을 해설사가 투어를 진행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한국관광공사 통합예약 사이트와 연계가 불가능한 어려움이 있었다. 앞으로는 정규 교육 과정을 수료한 해설사가 투어를 진행함에 따라 한국관광공사 통합예약 사이트에서 강서문화투어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예약 가능 코스는 위인 중심의 허준박물관 코스와 겸재정선미술관 코스, 자연환경 중심의 개화산 둘레길 코스 등 3개다.

강서구 문화관광해설사들은 올해부터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문화관광 해설을 한다. 강서구는 겸재 정선 권역, 허준 권역, 개화산 권역 등 크게 세 개의 관광 권역으로 나뉜다. 이번에 선발된 문화관광해설사 10명은 이들 권역에 골고루 나뉘어 해설을 맡게 된다.

“초등학교 때 개화산으로 소풍을 많이 갔죠. 해설사가 되고 보니 가는 곳마다 어린 시절 소풍 갔던 곳, 평소 트레킹하는 곳이라 이야깃거리가 있어 좋죠.”

개화산 권역을 담당하게 된 강성희씨는 강서에서 태어나 자란 강서 토박이다. 그는 “어렸을 땐 내가 살던 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잘 몰랐다”며 “같은 곳을 관람하더라도 주제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 다양한 주제로 스토리텔링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두 시간 해설하면 지역에 대한 책 한두 권 읽은 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게 하고 싶죠.” 김은경씨는 “길동무, 말동무가 되어 지식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재밌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며 “관람객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지역 문화를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갓 졸업한 신병이 처음부터 수류탄 던지고 그런 거 잘 못하잖아요.” 윤용기씨는 “저희가 아직 실전 경험은 없다”며 “열심히 노력해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주변에서 정체성을 찾고 시민들을 자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