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학생들의 미세먼지 측정치…한데 모으니 값있는 데이터

등록 : 2020-01-09 14:40
커뮤니티매핑센터와 송내고등학교의 지하철 2호선 커뮤니티매핑 프로그램

학생들 측정 통해 미세먼지 인식 높여…“미세먼지 교육으로 확대 바람직”

“어… 어… 측정기 미세먼지 수치가 갑자기 높아져요.”

지난 1월4일 오후 3시 신도림역 근처 외부 지하철 환기구(번호 ‘2-275’) 옆. 경기도 부천시 송내고등학교 2학년 이재현군 등 학생들이 환기구 위에 놓아둔 미세먼지 측정기를 보며 놀란 듯 말했다. 덜컹덜컹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가 난 뒤 측정기에 뜬 미세먼지(PM10) 수치는 ‘92’로, 이날 송내고 학생들이 측정한 수치 중 최고였다. 이날 대기 중 미세먼지는 70 전후, 2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은 60 정도였다.

환기구의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 이군은 “인도를 걷다 환기구 옆을 지나갈 때 아무 생각 없이 공기를 마셨는데 그 공기가 얼마나 나쁜지 측정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측정에 같이 참여한 1학년 김하늘양은 “직접 측정해보니 지하철역 환기구 등에 미세먼지 여과 시스템을 설치할 필요성이 크게 느껴졌다”고 화답했다.

공동체 지도를 작성하는 커뮤니티매핑센터 임완수 대표(모자 쓴 이)와 스태프, 경기도 부천 송내고등학교 안재정 교사(임 대표 왼쪽)와 학생들이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미세먼지 데이터를 모으러 출발하기에 앞서 지난 4일 오후 2시 홍대입구역에서 측정기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군과 김양 등은 이날 커뮤니티매핑센터(대표 임완수 미국 메해리 의대 교수)가 실시한 ‘지하철 2호선 커뮤니티매핑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2013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인 커뮤니티매핑센터(www.cmckorea.org)는 공동체의 힘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지도를 만드는 단체다. 설립자인 임완수(55) 대표는 1990년대부터 30년 동안 미국에서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한 환경과 보건의료 연구를 해왔다.


센터는 지금까지 350여 개의 커뮤니티매핑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정 지역의 장애인 접근성 상태 표시 지도를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것을 비롯해 서울 화장실 지도, 포항지진 피해 지도, 발달장애인 편의시설 지도, 광화문 편의시설 지도, 마곡지역 냄새 지도 등을 제작했다. 2016년에는 구글에서 진행한 구글 임팩트 챌린지에서 커뮤니티매핑 활동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공동체 지도 제작을 해오던 센터는 2019년부터는 미세먼지 측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해마다 1~3월을 중심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만, 서울시의 ‘미세먼지 시즌제’ 등 다각적인 노력에도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센터에서는 서울 시민 1만 명 정도가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면 모인 빅데이터를 통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센터에서는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를 개발했다. 간이 측정기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값을 사물인터넷을 통해 센터의 서버에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임 대표는 “간이 측정기는 수천만원대에 이르는 고가의 장비보다 미세먼지 값이 조금 높게 측정되지만, 이를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을 통해 보정함으로써 데이터의 유용성을 높였다”고 설명한다.

이날 시행된 ‘지하철 2호선 커뮤니티매핑 프로그램’도 공동체가 힘을 모아 미세먼지 지도를 만드는 커뮤니티매핑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선 안재정(42) 환경교사의 인솔 아래 송내고 학생 27명이 오후 1시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커뮤니티매핑센터에 도착했다.


지하철 환기구가 가장 미세먼지 높아…“저감장치 필요” 목소리

스크린도어 설치 승강장 비교적 낮아

“시민 네트워크가 미세먼지 저감 도움”

학생들 “미세먼지 문제 더욱 관심” 다짐

부천 송내고등학교 학생들이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근처에 있는 환기구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올려놓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학생들은 이수정(국민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씨 등 센터의 스태프와 함께 임완수 대표로부터 이날 만들 공동체 지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교과중점학교인 송내고에서 온 학생들은 이미 대부분 공동체 지도 만들기의 의의를 알고 있었다. 1학년 김진환군은 미세먼지 커뮤니티매핑에 대해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스스로 미세먼지를 측정해 유용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정부가 예산 제약 등으로 데이터 생산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시민 네트워크가 우리 사회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학생들과 센터의 스태프는 오후 2시부터 2~3명씩 조를 짠 뒤 2호선 지하철을 타고 흩어졌다. 각 팀이 3~4개 역을 나누어 측정한 뒤 측정치를 커뮤니티매핑센터 서버에 모으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이 흩어져 미세먼지 수치를 재센터에 측정치를 보내오자, 지하철 2호선 미세먼지 지도(www.mapplerk3.com/pmsubway2020/)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 서너 개 측정값이 올라왔을때만 해도 그것은 단순히 흩어진 몇 개의 점처럼 보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측정한 데이터가 70개 넘어서면서 일정한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5시께 데이터가 200개 정도 모이자 데이터를 표시한 점들이 지하철 2호선의 윤곽을 정확히 그려냈다.

몇 개의 역을 이동하며 미세먼지를 측정하느라 피곤한 기색이었던 학생들도 완성된 지도를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2학년 나가연양은 “처음에 점 몇 개만 찍힐 때는 이걸 하면 뭐가 바뀌긴 하겠어 했는데, 커뮤니티매핑 활동이 끝나고 2호선 모양대로 점이 찍힌 것을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각각이 모은 미세먼지 데이터는 비록 몇 개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함께 미세먼지 데이터를 모을 때 그것은 선이 되고, 모양이 되며, 마침내 유용한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커뮤니티매핑 과정을 통해 몸소 배우게 된 것이다.

이날 아이들은 실제 측정해보며 스크린도어의 중요성도 새삼 깨달았다. 이날 서울 실외 미세먼지는 간이 측정기로 70 안팎으로 기록될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가 장착된 2호선 승강장은 50~60 정도로 실외보다도 낮았다. 외부 환기구로 뿜어져 나오는 미세먼지가 90 정도로 높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2호선 승강장의 상대적으로 낮은 미세먼지 수치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덕이 크다고 학생들은 결론내렸다. 2학년 박혜진양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외부보다 지하에 있는 2호선 역사에서 미세먼지가 더 적은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고, 1학년 김하늘양은 “스크린도어가 자살 예방 기능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세먼지를 어느 정도 절감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임완수 대표는 “커뮤니티매핑은 주민의교육, 참여, 역량 강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리정보기술로 지역의 이슈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결하고, 또 공유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지하철 2호선의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인식과 그 해결 필요성을 크게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이어 “이런 커뮤니티매핑을 통한 미세먼지 측정 과정을 모든 학교에서 수업한다면 우리나라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