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용산공원화 사업의 핵심은 역사여야 합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 100년 불이익에 대한 배려와 미래 세대를 위한 조치 필요

등록 : 2016-05-26 15:12 수정 : 2016-05-26 18:10
<서울&>은 12호부터 자치면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의 자치구청장을 빠짐없이 찾아가 인터뷰하는 ‘구청장이 간다’ 시리즈 기사를 매주 싣는다. 구청장이 자기 동네 주요 명소나 정책과 관련한 주요 공간 등을 직접 소개하고, 현안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편집자

용산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 유관순 열사의 옛 묘지 인근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에 세운 유관순열사 추모비 앞에 선 성장현 용산구청장.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미래도 없다는 지론을 펴는 성 구청장은 용산공원화 사업도 근대유산과 역사를 제대로 세우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20살이 넘은 성년에게 제자리걸음을 강요해선 안 된다. 권한은 과감하게 이양하고, 예산도 충분히 줘야 한다. 결과는 시민이 선거로 심판하니 걱정하지 말고 지방자치가 꽃피도록 지원해 주길 바란다.”

성장현(61) 용산구청장이 자치단체 권한 확대를 강조하는 데에는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사업에서 용산구의 이해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용산 미군기지가 내려다보이는 용산구청장 집무실에서 성 구청장을 만났다. 성 구청장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5월 한낮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무실 커튼을 걷은 채 용산 미군기지를 내려보고 있었다.

“저기가 용산 미군기지입니다. 100년 동안 용산이면서도 용산이 아닌, 용산구민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죠.” 이제 막 짙어진 초록이 가득한 기지는 언뜻 봐도 쾌적해 보였다. 성 구청장은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사업을 두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용산구청사 터는 미군에게 돌려받은 공여지

용산 미군기지 자리에는 2027년까지 국가공원이 조성된다. 용산공원 조성 지구에 주변까지 더하면 사업 대상 지구만 거의 1200만㎡(약 360만평)다. 용산구의 52%에 이르는 땅이 상전벽해를 앞두고 있지만, 막상 용산구는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사업이 중앙정부 주도의 국가공원으로 진행되는 탓이다.

“그동안 고도제한, 개발 배제 등으로 용산 사람들이 감내한 고통은 큽니다. 왜 동작대교가 직선으로 길을 잇지 못하고 기형적인 다리로 남아 있어야 합니까?” 성 구청장은 용산이 짊어져 온 짐에 대한 인센티브로 신분당선의 보광역 유치와 이촌역 경유, 보광변전소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지역주민의 의견 수렴을 위해 구민협의권 정도라도 보장해 달라”는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다. ‘용산공원 조성만으로도 용산구는 큰 수혜를 받는다’며 협의 절차에서 용산구를 배제해 왔다는 것이 성 구청장의 설명이다.

성 구청장은 자신이 최연소 구청장에 당선된(1998년) 뒤 벌였던 ‘아리랑택시’(미군 전용 콜택시) 회사 터 반환 협상 과정을 들려주었다.

“지금 용산구청사가 ‘아리랑택시’ 차고지 자리입니다. 미군 공여지(미군에게 군사 목적으로 사용권을 준 땅)였는데 미군이 택시회사에 임대하고 있었거든요, 군사기지로 사용 목적이 다 됐다면 돌려줘야 한다고 따졌지요. 결국 2003년 12월 반환받았습니다. 미군도 자치단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제 나라 정부가 귀를 막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성 구청장이 자치단체의 권한 강화를 말하는 이유다.

성 구청장이 해 온 일 가운데 역사와 관련된 일들이 많다. 유관순 열사 추모비 건립, 이태원 베트남 퀴논 거리 조성, 용산을 찾고 알리기 위한 출판사업 등이 대표적인 일들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미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유관순 열사는 일제에게 죽임을 당한 뒤 15일 만에 이화학당이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르고, 지금의 이태원 인근 공동묘지에 묻었답니다. 그러곤 일본이 군기지를 만들면서 공동묘지를 없앴는데, 그때 시신이 망실됐다는 겁니다. 용산구민의 뜻을 모아 이태원부군당 역사공원에 지난해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이태원 땅의 역사를 후손들이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퀴논 거리를 조성한 까닭은 베트남과의 화해뿐 아니라, 미군 철수로 위축되기 쉬운 이태원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되는 콘텐츠라는 믿음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용산기지 100년을 책으로 묶은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2014년 용산구청 출간)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관련 사진을 모은 사진집 <용산을 그리다>(2015년)를 펴내고 사진전을 연 것도 “제대로 된 공원을 만들어야 지역에 도움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그의 역사관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용산공원에 대한 성 구청장의 생각은 ‘역사와 생태, 휴식’이란 말로 요약된다. 남산과 한강을 잇는 생태 축 조성, 민족성, 역사성, 문화성을 간직한 국가공원이라는 공원 조성 기본계획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불만이 나오는 까닭은 해당 자치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배려가 없는 것 외에도 용산공원 사업이 애초의 목적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2017년으로 늦춰졌습니다. 애초 계획과 달리 일부 시설이 남습니다. 국가 안보상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국가공원 한복판에 미군 편의시설인 용산 드래곤 힐 호텔을 남겨 둔다는 데 이게 말이 됩니까? 국가공원의 정체성과 국민적 자긍심이 먼저 고려돼야 하는 게 아닌가요?”

지난 4월29일에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추진기획단은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 및 정비구역 변경 공청회’를 열었다. ‘공원에 들어서게 될 콘텐츠에 대한 설명과 주민 및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였지만, 정부기관들의 용산공원 입점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의견 수렴 대상인 용산구는 말석조차 얻을 수 없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용산공원에는 중앙정부 7개 기관의 8개 시설이 문화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나마도 신청한 18개 시설 중에서 추려 낸 시설들이다.

단절됐던 용산의 동과 서를 잇는 계획 필요

“용산공원은 공원 구역만 여의도의 84%, 서울숲의 두 배에 이릅니다. 그 안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명암을 보여 주는 건축물만 130여개입니다. 200년 이상 된 느티나무만 20여 그루가 되는 등 식물군락지도 잘 보존돼 있구요.”

공청회에서 나온 사업계획보다 성 구청장의 말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는 건 ‘생태와 휴식’이라는 공원의 기능을 따져 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울시도 지난 23일 ‘국토교통부의 용산공원 콘텐츠 선정안’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공원 조성 기본 이념과 콘텐츠 선정안이 맞지 않는데다 부지 선점식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 무산으로 주춤했던 용산의 개발 바람은 용산역을 중심으로 다시 불고 있다. 신라HDC면세점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관광객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고, 용산역 앞 광장 지하에는 ‘리틀 링크’로 알려진 지하 공간화 사업이 연말께 착공된다. 2017년에는 용산푸르지오써밋과 래미안 용산SI 등 대형 고층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앰배서더 호텔도 개관할 예정이다. 문제는 개발 효과를 원효로 일대의 ‘서용산’ 지역과 이태원 지역 등으로 확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자상가 일대에 행정력이 집중 투입될 겁니다. 전자상가 전성 시대를 다시 열어야지요. 이태원 지역에도 테마 거리를 조성하는 등 관광특구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죠!”

용산구가 용산공원화 사업을 우려와 기대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용산공원화 사업 기본계획안에는 근 100여년 동안 단절됐던 용산의 동과 서를 잇는 계획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