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쉐그린·권태수·김세화·허참의 스타산실

1970~80년대 포크 음악의 또 다른 산실 쉘부르 上

등록 : 2019-03-14 15:23 수정 : 2019-03-21 14:07
1973년 고 이종환이 창업한 클럽

쉘부르서 인기 얻어 라디오 출연

쉐그린, 쉘부르 창업 일등 공신

허참 우연히 들렸다 입담 발휘해 취직

종로 쉘부르 간판과 내부 모습. 1973년.

1953년 서울시 종로구 무교동(현재 종로구 서린동)에서 개업한 음악감상실 ‘세시봉’은 각종 대중문화 프로그램으로 당대 젊은 세대의 사랑방 구실을 했던 명소였다. 뒤를 이어 고 이종환이 창업한 라이브클럽 ‘쉘부르’는 1970~80년대 무명 통기타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각광받았다. 종로 시대와 명동 시대로 나뉘는 쉘부르 출신 가수들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1부는 종로 시대를 장식했던 쉘부르 원년 가수들의 음반 이야기다.

자유롭고 불같은 성격 탓에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이종환은 대학을 중퇴한 뒤 음악다방 디제이(DJ)로 활동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1964년 MBC 라디오 <임국희의 한밤의 음악편지>의 피디(PD)가 된 그는 <탑튠 퍼레이드>의 연출과 진행을 맡으면서 팝송 해적판의 선곡과 기획에 관여했다. 그는 자신이 진행했던 라디오에서 해적판으로 제작한 팝송들을 선곡하고 공개방송과 초대 가수들의 라이브 음원을 음반으로 제작하면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종환은 1973년 서울 종로2가에 음악실 쉘부르를 창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당시 쉘부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가수는 이종환이 진행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지도를 얻었다.


종로 쉘부르의 원년을 장식한 포크 듀오 쉐그린과 어니언스. 1973년.

자연스럽게 쉘부르 출신 가수들에게 ‘대장’으로 불린 그는 가요계의 권력자로 급부상했다. 포크 듀오 쉐그린은 쉘부르 창업의 일등 공신이다. 멤버 이태원과 전언수는 밴드가 해체하자 1970년 듀엣으로 전환했다. 이태원이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사이먼과 가펑클’로 불렸던 이들은 당시 11개 중·고등학교에 팬클럽을 보유했을 정도로 학생층에 인기가 많았다. 권태기가 찾아온 두 사람은 1973년 각각 솔로 가수로 독립했지만 쉘부르 창업과 더불어 재결합했다.

종로 쉘부르의 원년 멤버인 포크 듀오 어니언스와 개그맨 고영수는 이종환의 주선으로 함께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 기회를 잡았다. 특히 ‘사랑의 진실’ 가사 중 “빠빠빠빠” 부분이 학생층에 유행하면서 음반은 발매하자마자 품절되며 어니언스 열풍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 앨범은 원작자에 대한 의혹이 나돌았다. 사실 임창제 이름으로 발표한 히트곡들은 김정호의 작품이었다. 덩달아 관심이 집중된 김정호도 종로 쉘부르 무대에 올랐고, 이종환의 주선으로 1974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고 이종환 기획 선곡 팝송 해적반들 1960년대.

1975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음악실 쉘부르(당시 업소 간판과 음반에는 ‘셸부르’로 표기) 기획 작품집의 1집은 쉐그린의 최대 히트 음반이자 마지막 음반이기도 하다. 당시 외래어 팀명 사용금지 분위기로 ‘막내들’이란 한국어 팀명을 동시에 표기했다. ‘삼돌이 짝사랑’ ‘동물농장’ ‘어떤 말씀’ ‘기다림’ ‘밤은 가고’ ‘연가’ 등 여러 곡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얼간이 짝사랑’은 전언수의 코믹 대사가 유쾌한 노래이고, ‘어떤 말씀’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위세를 떨쳤던 1970년대의 사회상을 코믹하게 터치해 히트했다. 하지만 멤버 모두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활동 금지의 아픔을 겪었다.

쉐그린 독집으로 제작된 시리즈 첫 작품의 성공에 고무된 지구레코드는 곧바로 종로 쉘부르의 무명 통기타 가수들을 소집해 2집을 제작했다. 이 앨범에서 발굴된 최대 유망주는 권태수다. 1974년부터 쉘부르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폴 앵카의 히트 팝송 ‘파파’(PAPA)를 번안해 불렀다. 이종환의 추천으로 같은 해에 같은 곡을 번안했던 신인 가수 권태수와 인기 가수 이수미의 노래는 모두 동반 히트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1970년대 중후반은 최백호, 김민식, 이영식 등 뛰어난 신인 남자 가수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권태수는 1977년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에서 남자 신인상을 받으며 쉘부르 출신 가수들의 위상을 높였다.

음악실 셸부르 기획 작품집 시리즈 음반 1~4집 LP 지구레코드. 1975년.

쉘부르 시리즈 2집을 통해 데뷔한 김홍경, 김민식, 남성듀엣 버들피리 등 많은 무명 통기타 가수들도 인기 가수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3집에서는 ‘나비소녀’ ‘겨울여자’로 유명세를 타게 되는 김세화를 발굴했다. 당시 여고 3학년 김세화는 서울 청계천의 밤업소 아마존에서 작곡과 대학생 오빠의 졸업 작품 발표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곳에서 우연하게 그녀의 노래를 들은 개그맨 손철이 쉘부르에 초대했다. 이종환의 즉석 오디션에 통과한 그녀는 데뷔의 기회를 잡았다. 김세화의 독집으로 제작된 시리즈 3탄은 포크 명곡 ‘밀밭’ 등 데뷔 시절 김세화의 풋풋한 포크송이 담긴 희귀 앨범이다.

1975년 동양방송 라디오가 주최한 대학생 보컬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채은옥도 쉘부르 무대에 올랐다. 이후 1976년 발표한 ‘빗물'은 이종환의 지원 속에 히트했다. 방송진행자 허참은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입구에 붙어 있는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 안내문을 보고 쉘부르에 들어갔다. 행운권 추첨 행사에 당첨된 그는 무대에서 탁월한 개그 능력을 선보였다. 이에 이태원이 이름을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태원이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라고 다시 묻자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라고 말하는 재치를 보였다. 허참의 본명은 이상용이다.

이종환에게 인정받은 허참은 취직을 했다. 신청곡을 틀어주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사회자(MC)까지 했던 그는 쉘부르의 명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공연진행자로 승격된 그는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 코너로 유명세를 타면서 결국 방송 진출에 성공한다. 간간이 노래 실력도 뽐내던 허참은 1978년 솔로 앨범까지 발표했다. 수록곡 중 ‘왜 몰라주나’는 당시 제법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 정도로 반응을 얻었다.

종로 시대를 장식한 쉘부르 가수들의 LP 음반들.

인기 가수 전영록, 김만수, 윤정하, 나희명도 종로 쉘부르 출신이다. 쉘부르 출신 가수 김세화와 권태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MBC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작은 연인들’을 함께 불러 1979년에 빅히트를 터트렸다. 처음 이 노래는 김세화와 이영식이 함께 부를 예정이었지만 이영식의 결혼으로 파트너가 권태수로 교체된 사연이 있다. 음악실 쉘부르 기획 시리즈 음반은 1975년 한 해에만 4장이 발매되었다. 이수경의 독집으로 발표된 4집은 반응을 얻지 못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후 쉘부르는 종로 시대를 마감하고 명동으로 옮겨 전성 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