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남산, 100년의 아픈 역사 흔적을 찾아서

역사 탐방길 ‘남산 기억로’

등록 : 2019-01-31 15:51
정각원

2019년 새해 첫 달도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저마다 이맘때쯤 새해 다짐을 했던 ‘버킷리스트’를 되짚으며 이행 여부를 점검해볼 것이다. 하지만 올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올해가 성별과 신분, 종교를 뛰어넘어 민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조국 독립을 외쳤던 3·1운동(1919) 100주년이라는 사실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의식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 서울 남산 일대를 찾았다.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수많은 내·외국인이 다녀가며 서울 대표 명소로 자리잡은 남산. 관광 명소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 일대 곳곳에 일제 침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미처 몰랐던,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다.

조선 시대에 남산은 신성한 산으로 추앙받았다. 태조 이성계가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는 남신을 모신 국사당을 남산에 지은 데서 나타나듯이 남산은 국가의 제례 공간이자 민간 신앙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일제가 남산에 신사와 신궁을 짓고 공원을 만드는 등 침략의 손길을 뻗치며 정치와 종교, 문화의 지배 공간이 됐다. 우리의 이런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겨보자는 의미에서 중구는 2018년 3월부터 역사탐방길 ‘남산 기억로'를 운영한다.

남산 기억로는 장충단공원에서 시작해 안중근 기념관에 이르는 총 4㎞ 길이의 도보 탐방 코스다. 장충단공원, 동국대 정각원, 통감관저 터, 통감부 터, 왜성대 터, 노기신사 터, 경성신사 터, 한양공원비, 조선신궁 터 등 9개의 주요 지점을 지난다.

장충단비

코스의 첫 번째 지점인 장충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충원이라 할 수 있는 제향 공간이다. 을미사변 때 순국한 장병을 기리기 위해 고종의 명으로 1900년에 건립됐다. 하지만 일제는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고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추모하는 사찰 ‘박문사'를 지었다. 광복 이후 박문사는 철거됐고, 현재 공원 일대에는 이준 열사와 유관순 열사 동상, 3·1운동 기념탑 등을 찾아볼 수 있다.

통감관저 터는 일제 침략기에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으로, 1910년 3대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현재 이곳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자리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이름과 생생한 증언 등 아픈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다.


몸을 조금만 돌리면 ‘거꾸로 세운 동상’도 눈에 띈다. 고종과 대신들을 겁박해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한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이다. 동상은 광복 직후 파괴됐지만 2006년 곤스케 이름이 새겨진 표석이 발견되어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웠다.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다.

조선신궁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식민 지배를 상징하기 위해 남산에 지은 신사다. 조선 내 크고 작은 신사가 1100여 개나 됐는데 그중 가장 큰 곳이 조선신궁이었다. 일제 패망 후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는 백범 김구 선생 동상과 백범광장, 안중근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일제 침략의 어두운 역사를 독립운동가의 기운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해방 이후 일제의 흔적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아픈 역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늘진 역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산 기억로를 통해 과거 그날의 역사를 반추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산 기억로는 4명 이상이 모이면 매주 화, 목, 토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할 수 있다.

이은혜 중구청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중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