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의 도시 비우기, 나라 전체로 확산되길…”

다선의 힘, 구정의 완성ㅣ김영종 종로구청장

등록 : 2019-01-24 15:15
환경·미관 방해하는 시설물

2013년 이후 1만9천 건 정비

한복·한식·한옥·한지·한글 등

한국적인 것 유지에 역량 집중 자평

평등·공정, 소통·참여, 혁신·분권 등

민선 7기의 사람 중심 도시의 모토

구도심은 상업 건축 재개발 불가능

지역 특성 맞는 문화 인프라·네트워크 우선


김영종(66) 종로구청장은 2010년 첫 취임 때부터 종로를 역사문화 도시로 규정하고, 한복 입기 등 우리 전통문화의 보전과 현대화, 불필요한 설치물을 없애 도시 경관을 정화하는 ‘도시 비우기’ 사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김 구청장은 종로구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주인공 중 한 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9일 인터뷰를 하던 중 김 구청장이 집무실에 걸려 있는 서궐도(옛 경희궁의 본모습을 담은 그림)를 가리키며 경희궁의 아픈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김영종(66) 구청장은 건축사 출신으로 도시 공간 전문가를 자임하는 드문 유형의 자치단체장이다. 역사문화 도시로서 종로구의 전통문화 보전과 한류 확산에 앞장서온 김 구청장은 “비워서 아름답게 한다”는 역발상의 ‘도시 비우기 사업’으로도 유명하다. 종로구에서 도시환경과 미관을 방해하는 시설물을 지속적으로 철거해 2013년 사업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1만9천여 건의 불필요한 시설물을 정비했다. 선수 제한(3회 연임 금지) 규정으로 이번 임기가 마지막인 그는 남은 3년여 임기는 종로의 정체성 유지에 꼭 필요한 사업을 제도화하고 시스템화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싶다고 말한다. 임기를 마친 뒤에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건설·환경, 문화 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다”며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64.4%의 높은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3선을 하게 된 원동력을 자평한다면?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한 행정 전문가로 취임 초부터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라는 슬로건을 실천하며 사람의 온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도시,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품격 있는 명품 도시를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종로에서 종로만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간직하고, 전통을 보전하며 종로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은 많은 사람이 종로를 찾고,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룬 도시재생으로 지역 경제를 살려내고 있다고 자평하고 싶다. 앞으로도 ‘사람 중심 명품 도시’를 완성하기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조용한 혁신을 계속하겠다.”

 

원래 상당히 성공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였다가 46살이 되어서야 정치에 입문했다고 들었다. 무슨 계기가 있었나?

“우리가 자라던 때는 시골(전남 곡성)에서 대학을 가기가 어려워 취업이 잘되는 전문학교에 갔지만, 한학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포부가 ‘입신출세하여 가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일해 어느 정도 경제적이 여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해 한창 사업할 나이인 40대 중반에 어려서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출직 도전에 나섰다. 저는 체질이 정치보다는 행정에 맞아 처음부터 살고 있는 동네인 종로구청장을 희망했다. 쉽게 된 것 같지만 12년 동안 경선과 본선에서 떨어져보는 등 낙선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주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2010년 민선 5기 선거에 도전하기 전에 시민단체 희망제작소가 개설한 ‘좋은 시장 학교’에 들어가 단체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연찬한(학문을 깊이 연구함) 것에서도 공직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때 학교 동기생들(당시 선거에서는 김 구청장이 동기생 중 유일하게 당선했다고 한다)이 선물한 기념패 ‘좋은 시장이 되기 위한 10계명’이 지금도 그의 집무실에 걸려 있다. 

  

지난 8년 임기 중 가장 내세우고 싶은 치적을 꼽는다면?

“종로구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중심 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한복, 한옥, 한식, 한지, 한글과 같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지키는 일에 역량을 집중했다.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청 직원들이 ‘전통 한복 입는 날’을 정해 먼저 실천하고, 한복을 입으면 할인해주는 한복 음식점 운영, 한복 입기 캠페인 등 다양한 사업도 펼쳤다. 해마다 9월에는 ‘종로 한복 축제’를 종로 곳곳에서 열고, 전통 음식 축제도 열고 있다.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행사는 물론이고 옛날 한지를 만들던 조지소가 있던 세검정 자리에 종이박물관 건립도 구상하고 있다.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진 통인시장, 버려진 가압장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윤동주문학관, 조선 시대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수성동 계곡 복원 등이 대표 사례다.

 

민선 7기 모토가 ‘사람 중심 명품 도시’인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제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건강 도시’란 자연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곳, 안전하면서도 건강한 도시, 문화와 예술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도시,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사람 중심의 도시다. 지속가능한 건강 도시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먼저 ‘평등과 공정’이다. 사람이 존중받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종로를 만들어가겠다. 둘째는 ‘소통과 참여’다. 항상 현장을 살피고, 협치를 추진할 것이다. 끝으로 ‘혁신과 분권’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형 권력 구조에 잘 대비해 주민의 의사를 가장 가까이서 듣고, 적극적으로 주민의 뜻이 국가 정책과 구정에 반영되도록 하겠다.”

 

3선 구청장으로서 후임자가 꼭 이어받았으면 하는 종로구의 정체성은?

“종로는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의 중심지로서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곳이다. 종로구가 추구하는 미래 도시는 전통을 잘 보존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사람 중심 도시이다. 사람이 행복하고 살기 좋은, 지속발전이 가능한 건강한 도시는 종로구청장의 책무다. 따라서 종로구는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잘 보존하는 일과 함께 양적 개발과 확장보다는 사람 중심의 질적 재생과 정비를 우선하는 도시재생에 의한 성장을 추진하는 게 맞다. 종로만의 우수한 문화 자산을 잘 보존하고, 복원·계승한다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될 것이고 이는 곧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져 주민 삶의 질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주민들은 개발 쪽에 관심이 더 많을 것인데.

“저는 구도심인 종로구의 도시재생을 한방에서 말하는 침술 효과에 비유한다. 종로구와 같이 정체된 구도심의 재생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나 거대 상업 건축 같은 개발 방식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침술 효과처럼 도시 곳곳의 지역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문화 인프라를 만들고 이들 점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주변 지역에도 활력을 확산하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 도시도 살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

 

3선을 했고, 지난해부터 지속가능 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에 조언하거나 기여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민선 7기는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알고, 행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지방행정 전문가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입법, 조직, 재정의 자치 3권을 보장해 중앙정부 업무를 대폭 지방에 넘기고, 그에 맞는 재정 확보가 이뤄져야 지방분권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지방재정은 국세와 지방세가 8 대 2 구조로, 중앙정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세계화, 지방화의 추세에 동시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이 구조를 7 대 3, 나아가 6 대 4 정도로까지 높여갈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연임 제한 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지막 임기 동안 주력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선수를 제한해 출마 자체를 막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도는 제도이니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임기에서 제가 종로 구정에 기여할 바를 확실하게 하고 싶다. 그동안 제가 해온 행정을 체계화하고 시스템화해서 다음 구청장들에게 넘기는 일이다. 종로는 역사문화 보전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도시다. 건물 보수도 이번이 마지막 보수란 생각으로 철저히 하고 보도블록도 최소 500년 가도록 만들자고 외쳐왔다. 불필요한 설치물이나 간판 등을 제거해 전통 도시다운 외관을 회복하는 도시 비우기 사업도 매우 중요한 발상이었다고 자부한다. 이런 것들을 시스템화하고 제도화해 후배 구청장에게 넘기고 싶다. 사업별 위원회를 상설하거나, 책자로 만들어 매뉴얼화하는 것 등을 생각하고 있다.”

끝으로 3선 임기를 마친 뒤 정치적 계획이나 포부 등 구상한 게 있으면 한 말씀 부탁한다.

“내가 종로에서 도시 비우기를 했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라 전체를 비우는 일을 해보고 싶다. 지금 우리 도시나 하천, 항만에 가보면 쓰레기 천국이다. 더는 방치하면 안 된다.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모두 합동으로 나서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도 요청한다. 우리 같은 일개 기초단체도 조례를 만들면서까지 하는 일인데. 신문 방송이 나서서 캠페인을 벌여야 할 일이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도시 공간 전문가…디테일 강해 별명 ‘육군 병장’

△민선 5~6기(2010~2018) 종로구청장 △단재 신채호기념사업회 이사(2007~) △한국수자원공사 이사(2004~2007) △김영종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2001~2010) △서울시공무원 근무(1973~1984), 건축사 자격 취득(1983) △조선대병설공업전문학교(1972),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1990), 한양대학원 행정학(박사) △1953년 전남 곡성 출생, 부인 김영자씨와 1녀

김영종(66) 종로구청장은 지난해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 64.4%의 높은 득표율로 종로구청장 3선에 무난히 성공했다. 김 구청장은 46살 때 정치판에 들어와 12년 만인 2010년 민선 5기 선거에서 종로구청장에 당선한 뒤 줄곧 종로 구정을 이끌고 있다. 그는 첫 임기를 시작할 때, 당선자 신분으로 건설비 100억대 규모의 장애인복지회관 건립을 모금운동으로 추진해 2년 만에 완공시키는 치밀한 추진력을 선보였다.

종로가 서울의 역사·문화 중심지인 점을 중시해 전통적인 도시 공간 유지와 한복, 한옥, 한식 등 전통문화 보존과 한류 확산에도 기여했다. 비움을 통해 도시 환경을 정화하자는 역발상의 ‘종로 도시 비우기’ 사업은 김 구청장 특유의 행정력을 잘 보여준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설치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건축사 출신답게 평소 행정의 도편수(조선 시대 건축 공사를 총괄하는 장인) 역할을 자임하는 그는 청년 시절 10여 년간 서울시 일선 공무원으로 일한 바도 있어 도시 정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웬만한 공무원 못지않다. 그가 내세운 종로구청 모토가 ‘작은 것부터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인 데서 보듯이 그는 매사 디테일을 무척 강조한다.

그의 초창기 별명이 “모르는 게 없고, 끝없이 잔소리를 해댄다”는 뜻에서 ‘육군 병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정책의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면서 관련 서적이 나오면 직원들에게 책을 돌리며 읽기를 독려한다.

건축사무소 운영 시절 현대건설 공사를 많이 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대표작은 현대건설이 지은 목동의 69층짜리 하이페리온. 종로에서 정치에 입문한 것도 계동 현대 사옥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전남 곡성의 한 농가에서 한학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난한 형편 탓에 광주에 있는 취업 과정의 병설 공업전문학교를 나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울시에서 기술공무원으로 근무했다. 30살에 건축사 시험에 합격해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자수성가했다. 어릴 적부터 입신출세해 집안을 일으키는 포부를 지녔던 그는 결혼할 때 부인에게 내건 조건이 “먹고살 만해지고 나면 선거에 나간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종로 주민이기도 한 이어령 교수, 도올 김용옥, 화가 이종상 등 학자, 철학자, 예술가들이 그의 멘토다. 평소 정치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구청장 임기를 마친 뒤 건설·환경과 문화 쪽에 공직이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며 일에 대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나를 있게 한 이것

어머니와 아버지, “사람이 철심이 있어야제”

아버지는 늘 “남 비방하지 말고 칭찬하기를 즐겨라”고 가르치셨다. 어머니는 유약해 보이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아그야, 약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마음에 철심(쇠같이 단단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외유내강의 철심은 ‘정직’이었다. 비방과 비난에 지칠 때면 어머니의 철심을 떠올리며 정직하기를 다짐했다.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