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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슈바이처의 고민 “퀴논 백내장센터 새 장비 필요한데…”

용산구-퀴논시 교류의 숨은 주역 이성진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안과 교수

등록 : 2018-10-11 15:41 수정 : 2018-10-11 15:42
2012년 이후 매년 두 차례 퀴논 방문

백내장센터서 고난도 수술 100여 건

“눈 새롭게 해드리면 한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 가질 수 있을 것” 기대

후발 백내장 치료용 추가장비 2억 필요

이성진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안과 교수가 베트남 퀴논시 병원 백내장센터에서 백내장 수술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2012년 이후 해마다 두 번 백내장센터를 방문해 고난도 환자나 수술비를 대기 어려운 환자들을 수술해왔다. 용산구청 제공.

용산-퀴논(꾸이년) 22년 교류 역사에서 교육 분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의료분야이다. 베트남 중부 지역 빈딘성에 속한 퀴논시는 자외선이 강한 해안 지역이라서 백내장 환자가 많다. 용산구에 따르면 베트남 실명 인구의 10명 중 7명은 백내장이라고 한다.

눈을 카메라에 비유하면 렌즈에 해당하는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지는 현상이 백내장이다. 제때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는 병이지만 퀴논시에서는 백내장으로 실명하는 환자가 많았다. 퀴논시립병원에서는 오래전에 호찌민병원에서 백내장 수술 장비를 대여해서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 백내장 수술장비를 돌려준 뒤부터 더 이상 백내장 수술을 하지 못했다. 또한 베트남에 의료보험제도가 있지만 백내장 수술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도 많아서 실명 위기의 환자가 적지 않았다. 일부 환자들은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나 호찌민 등 대도시로 가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 용산구가 퀴논시립병원 2층에 퀴논시 백내장치료센터를 개원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용산구에 본사가 있는 기업 (주)아모레퍼시픽 등의 협조를 얻어 2억원 상당의 백내장 치료 장비와 의료용품을 전달하면서 저소득층 대상 백내장 치료의 길이 크게 열렸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3천여 명에 이르는 백내장 환자의 수술이 백내장치료센터에서 이뤄졌다. 여기에는 ‘용산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이성진(52)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안과 교수의 헌신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2012년 용산구의 요청으로 퀴논시를 첫 방문해 백내장 환자 실태를 파악한 뒤 해마다 두 차례 휴가를 내어 퀴논시를 찾는다. 물론 의료팀을 이끌고서다. 이 교수와 의료진은 센터에서 상태가 심각한 100여 건의 백내장 수술을 직접 집도하고, 상대적으로 상태가 가벼운 환자에 대해서는 현지 의료진에게 안과 수술 기술을 전수해왔다. 이 교수는 지난 3월 방문 때에도 23명의 고난도 백내장 환자의 수술을 집도했다. 2016년부터는 현지 티엔 안과의사의 백내장 수술 건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2013년 백내장센터가 개설된 이후 3천 건의 수술이 이뤄졌다.

지난 1일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안과 진료실에서 만난 그는 “안타깝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였다. “백내장이 생긴 분들 중 대부분은 월남전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거나 적군으로 싸웠던 한국군의 행위를 목격한 분들이에요. 이분들 중에 베트남의 의료보험을 100% 보장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한국 돈 20만원도 안 되는 돈이면 수술을 받고 눈을 뜰 수 있는데 그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는 것이지요.”

지난 1일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의 안과진료실에서 이성진 순천향대학 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퀴논 백내장센터에 새장비 지원이 필요하고 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 교수는 갈 때마다 원가 15만원 상당의 인공 렌즈를 40~50개씩 구입해 간다고 한다.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환자에게는 이 교수가 가져간 인공 렌즈가 무료로 제공된다. 한번 방문할 때 800만~900만원어치의 수술 기구들과 소모품들을 가지고 가는데 퀴논시에서 집 한 채 짓는 비용이 800만원 정도라고 하니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잘 보이도록 눈을 뜨게 해드리면 한국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동반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퀴논시 맹호부대 주둔지에 세워진 위령탑에 ‘잊지말자 한국군’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것을 보고 무엇보다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이 교수는 그러나 백내장 수술이 퀴논 시민들의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렸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는 “한국군의 초토화 작전을 겪은 퀴논시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지만, 제게 ‘당신은 월남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2016년에 백내장 수술을 받은 레티카(77) 할머니는 “베트남전 당시 퀴논시에 한국군이 들어와 그때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좋아졌다”며 한국의 백내장 수술 지원이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다.

수술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보람이라는 그는 “누구라도 현지의 실상을 보면 도와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런 마음에 떠밀려 2012년 이후 해마다 자비를 들여 백내장 수술 재료를 구하고 일주일간 휴가를 내어 의료봉사를 지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퀴논시 백내장센터 의료봉사에 대해 “의·민·관이 삼위일체로 움직여 이룩한 좋은 의료봉사 모델”이라며 순천향대학교병원과 함께 용산구청과 아모레퍼시픽의 민관 지원의 공을 함께 언급했다. 이 교수는 또 봉사활동을 적극 지원해주는 모교 순천향대학교병원과 현지 방문 때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매번 300만원씩 지원해주는 순천향대학교병원 직원 나눔회에도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런 이 교수가 기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최근 퀴논시 백내장센터에서 백내장 수술 장비가 고장이 났다는 긴급 도움 요청이 왔다는 것이다. 1천만원 상당의 비용이 든다고 해서 우선 수리 후 후납을 하겠다고 하며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이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다. 그리고 백내장 수술 중 생긴 합병증을 처치하기 위한 추가 의료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2억원 상당의 추가 비용이 필요한데 그 비용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센터에는 백내장 수술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후발 백내장’을 치료하기 위한 야그 레이저라는 특수 레이저가 급하다고 한다. 여기에다 당뇨환자의 합병증세인 당뇨망막병증 검사와 치료를 하는 아르곤 레이저 등도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올해 크리스마스 즈음해 퀴논 시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올해 두 번째 의료봉사를 떠나는 것이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