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울에서 평양까지’ 가즈아~ 통일자전거로

자전거 출퇴근자 김보근 <서울&> 편집장, 따릉이로 평양 가기 꿈 부풀다

등록 : 2018-04-26 15:04
김보근 <서울&> 편집장이 지난 19일 통일대교 앞 ‘판문점’ 표시가 된 표지판 밑을 지나간다. 그날 ‘서울에서 평양까지 자전거 대행진’을 그리며 달렸던 김 편집장의 꿈은 통일대교 앞에 놓인 유턴 신호에 막혀버렸다. 하지만 제3차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이 되는 2019년 4월27일이라면 어떨까? 서울 시민들이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개성-평양까지 자전거로 달리는 것이 꿈이 아닐 수도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가상 시나리오, 제3차 정상회담 1주년 기념 서울~평양 통일자전거행진

더 이상의 자전거길은 없었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1주일 남짓 남겨둔 지난 19일 오전. ‘서울에서 평양까지 자전거로 달려볼 수는 없을까?’ 상상의 나래를 편 채 자전거로 한강 자전거길을 달려 통일대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통일대교에서 기다리는 ‘유턴 신호’들은 자전거로 평양 가기가 아직은 꿈같은 일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런데 내년 이맘때도 이런 상상이 꿈으로만 그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어쩌면 이 꿈을 현실로 바꿔줄 수 있는 민족사의 대전환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1년 뒤 자전거로 평양에 다녀오는 꿈을 꾸어본다.

2019년 4월27일 낮 1시


서울 시민 150여 명이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북측 판문각 앞으로 넘어갔다. 남과 북 사이를 가르는 휴전선 표시돌을 넘을 때, 북쪽 판문각에서 기다리는 50여 명의 평양 시민들이 자전거를 세워둔 채 박수를 보냈다. 서울 시민들의 ‘서울~평양 통일자전거행진’ 중 판문점~평양 구간을 함께하기 위해 평양에서 내려온 이들이다. 평양 시민들도 서울 시민들처럼 모두 한반도기가 가슴에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통일자전거행진이 없지는 않았다. ‘6·15 시대’인 2007년 5월에는 남쪽 월간지 <민족21>이 주최하는 ‘평양~남포 통일자전거대회’가 열렸다. 남쪽 시민 150여 명과 평양 시민 50여 명이 함께 평양 소년학생궁전을 출발해 평양~남포를 잇는 청년영웅도로를 달린 뒤 평양으로 돌아오는 대회였다. ‘10·4 남북공동선언’ 9돌인 2016년 10월4일에는 재중동포들을 중심으로 통일자전거행진이 열렸다. 이들은 이번 서울~평양 통일자전거행진의 북쪽 구간인 평양~개성~판문각까지 달렸다. 거기까지였다. 그 어떤 대회에서도 자전거가 휴전선을 넘은 경우는 없었다.

‘10·4 남북공동선언’ 9돌인 2016년 10월4일, 재중동포들이 중심이 돼 모인 통일자전거행진단이 평양시를 출발해 개성으로 달리고 있다. 통일자전거행진단은 개성에서 판문각까지 나아갔지만,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을 넘지는 못했다. 제공

‘릉라도’ ‘날파람’ 등 평양산 자전거와 서울 따릉이를 포함한 남쪽 자전거가 판문점을 벗어나 논밭 사이로 난 2차선 도로를 3㎞쯤 달린다. 5월의 본격적인 영농철을 준비하느라 자기 포전(채소밭)에 나온 북녘 농민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약 10분 뒤 폭 24m 왕복 4차선인 평양~개성 고속도로 끝자락에 서 있는 북쪽 인민보안원(경찰) 사이드카가 보인다. 서울시청~판문점까지 호위해준 서울 경찰청 소속 사이드카와는 다른 종류였지만, 역시 평양까지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주리란 믿음이 생긴다. 이런 변화도 2018년 4월27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봇물 터지듯 진행된 남북 민간 교류의 성과이다.

사이드카가 확보해준 길을 달리던 통일자전거행진단은 6㎞를 나아간 뒤 개성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자전거 행진단은 선죽교를 지나 만월대 발굴 현장을 둘러보고 잠시 쉰 뒤, 방향을 남쪽으로 잡아 개성공단을 둘러봤다. 정상회담 이후 기업인들의 공단 방문이 이루어지는 등 조업 재개를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시 평양~개성 고속도로에 오른 자전거 행진단 머리 위로 금천, 평산, 서흥, 봉산 등 북한 주요 도시로 나가는 나들목 표지판이 지나간다. 고속도로는 남쪽 고속도로보다 오가는 차량이 적어 한가한 느낌이다. 하지만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다녀갔던 이 길을 오늘은 200여 명의 서울 시민과 평양 시민들이 자전거로 달린다. 내일은 더 많은 차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가는 물자를 실어나를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이미 남북 교류도 사회문화 부문을 넘어 경협으로 확산돼가는 추세다.

해가 뉘엿뉘엿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통일자전거행진단 앞에 어느덧 1박을 하기로 한 사리원 나들목 푯말이 나타났다. 벌써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100㎞ 이상 달린 것이다. 사리원 시내로 들어선 행진단은 우선 성불사를 찾아갔다. 자전거대회에 참가한 남과 북 시민들이 “성불사 깊은 밤에~”로 시작하는 가곡 ‘성불사의 밤’을 함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몇몇 서울 시민은 “성불사가 경주에 있는 절 아니었어요?”라며 무안한 듯 웃는다.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때가 1932년. 그 당시는 성불사가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었을 터인데, 오랜 분단의 세월이 성불사의 위치마저 잊어버리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분단된 뒤 서로를 적대시한 남북은 서로가 다른 반쪽의 자연과 문화를 잊고 살아왔다.

서울시와 평양시 당국이 합의해 통일자전거행진 행사를 여는 것도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면서 힘을 모으자는 의미가 크다. 자전거는 ‘지금껏 각각 하나의 바퀴였던 남과 북이 서로 힘을 모아 두 개의 바퀴로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달려보자’는 큰 상징인 셈이다. 밤이 깊어가면서 절 안팎에서는 남북 시민들이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페달을 밟으면서 흘린 땀이 서로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일까? 간간이 맑은 웃음소리도 터져나온다.

사실 서울과 평양의 교류 전망 또한 그 웃음소리만큼 밝다. 서울~평양 통일자전거행진과 함께 논의되던 경평 축구대회도 올해 안에 평양에서 열릴 것이 확실시된다. 1929년 시작된 경평 축구대회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민중의 단합을 상징하는 대회였다. 하지만 38선이 그어지고 남북 통행이 금지된 상황에서, 평양 선수들이 경비망을 뚫고 어렵게 내려왔던 1946년 대회를 끝으로 지금껏 열리지 못했다. 그때 평양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내년에는 평양으로 초청하겠다”는 말을 70여 년 만에 지키게 된 셈이다.

이와 함께 서울의 상하수도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계획 기법을 평양에 전해주는 협력사업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가 주로 농업과 인도적 지원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첨단’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서울시의 도시계획과 도시재생 기법도 북한이 가장 관심 갖는 ‘첨단’ 교류 협력 대상이다. 사리원 밤하늘의 쏟아질 듯 많은 별이 반짝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70여 년 만에 나누는 서울과 평양 시민들의 살가운 대화가 더욱 깊어갔다.

2019년 4월28일 아침 8시

통일자전거행진단이 사리원에서 출발했다. 이제 평양까지의 거리는 50㎞ 남짓. 점심 이전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서인지, 남북의 자전거들은 서로 스스럼없이 섞여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속도가 느려지는 구간에서는 한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서울과 평양 시민이 서로 손을 높이 들어 화합을 다짐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곧 눈앞에 대동강과 ‘충성의 다리’가 나타났다. 1983년 9월6일에 완공된 총길이 약 1750m인 충성의 다리는 평양~개성 고속도로의 시작점이다. 천리마거리와 통일거리를 연결해주는 다리 위에 오르자 오른쪽으로 양의 뿔을 닮은 양각도와 양각도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양각도 호텔에는 다시금 남쪽 손님들로 붐비고 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 ‘김정은 시대 기념비적 건축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대동강변을 4㎞쯤 달리자 통일자전거행진단의 종착지인 김일성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행진단을 반기느라 평양 시민들이 꽃술을 흔들며 “통일” “평양” “서울”을 외쳤다. 자전거에서 내린 행진 단원 중 누군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선창하자 모두 한목소리로 “꿈에도 소원은~”으로 답한다. 두 바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내년 2020년에는 그 하나 된 노래가 광화문광장에서 더욱 큰 울림으로 퍼져나갈 것이란 단원들의 기대감이 김일성광장을 감쌌다.

서울역-판문점(평화의 집, 판문각)-농로 사이 2차선 3㎞- 평양~개성고속도로 남단-개성만월대·개성공단-금천·평산·서흥·봉산-사리원(1박)-충성의 다리-김일성광장.

김보근 <서울&> 편집장은 자전거여행 안전가이드 자격증을 딴 뒤 4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전거 마니아다. 또 2001년부터 기사에 등장하는 판문점, 개성, 사리원, 평양 등지를 포함해 15차례 북한의 여러 곳을 방문·취재했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