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동네 대통령’ 졸업하는 5인, 구청장을 말하다

‘인생학교’ ‘엄마’ ‘농부’ ‘막사발’ ‘만질 수 있는 정치’ 등 5인5색 비유

등록 : 2018-04-12 15:18
‘구청장 졸업’을 앞둔 재선·3선의 구청장 5인이 서울& 좌담회에 앞서, 임기 중 자신의 대표 성과 사업을 나타내는 열쇳말을 쓴 보드를 들고, 지난 3일 오후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스튜디오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김영배 성북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김우영 은평구청장, 차성수 금천구청장, 이해식 강동구청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6월 지방선거 불출마 5인 서울& 좌담회

마치 졸업식을 치르는 풍경 같았다. 지난 3일 오후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스튜디오 카메라 앞에 선 서울 구청장 5명은 졸업사진을 찍는 듯한 화기애애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제7회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한 서울 지역 구청장 5명의 ‘서울& 좌담회’에 앞서 커버사진 촬영에 나선 구청장들의 표정에는 막중한 업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로를 모색했다는 후련함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차성수 금천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이해식 강동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김우영 은평구청장 등 좌담 참석자 5명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체제 아래 민주당 소속 구청장으로서 길게는 10년, 짧게는 8년의 재임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 적대적인 정치 환경에다 열악한 재정 형편 속에서도 각종 복지 이슈를 개발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자치행정을 펼쳐 지방자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연임 금지 조항에 따라 불가피하게 불출마하는 이해식 구청장을 빼고 나머지 네 명은 출마 자격이 있지만 국회의원직 도전 등 제3의 길을 모색하느라 스스로 3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그들에게 구청장은 어떤 자리였을까? 5인 5색의 답이 돌아왔지만, 적어도 자리의 크기는 가장 작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장이라는 외형적 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게 한결같은 답이었다.

대학교수(동아대)와 대통령 수석 비서(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민참여수석 비서) 등 다양한 자리를 거친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구청장직이란 “개인적으로 인생학교 같았다”고 표현했다. “큰 부자부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가장 비참한 사람까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없었고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우지 못했을 겁니다. 이게 저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차 구청장(2010~2018년 8년 재임)은 “세 번 이혼하고, 자식들은 다 도망갔는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못 되고, 폐지 주우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그 인생 스토리를 1시간가량 들었어요. 구청장이 아니면 어떻게 들어보겠어요?” 하고 반문했다.

2008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10년째 구청장을 하고 있는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엄마 같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이나 개인적으로 고통받는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늘 엄마로서 책임이랄까, 이런 것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상당히 부끄러움도 크지요.”

지난해 7월 가장 먼저 불출마를 선언한 유종필 관악구청장(2010~2018년 8년 재임)은 “구청장이란 자리는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새 정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게 굉장히 추상적이고 만져지지 않아요. 그런데 구청장이 하는 일은 행정이자 정치인데, 이게 주민들이 바로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 효과도 즉각 나타나잖아요.”


김우영 은평구청장(2010~2018년 8년 재임)은 “구청장은 농부 같아요”라고 했다. 그는 “성실하고 꾸준한 생각이 필요한 게, 농부랑 비슷해요. 우리가 (세수 면에서) 풍작을 많이 내면 중앙정부에서 싹 거둬가잖아요”라면서 구청장을 소작농의 처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중앙정부가 재정 정치를 잘못해서 부자 감세하고 그다음에 복지는 자치구에 떠넘기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힘들게 일했어요.”

김영배 성북구청장(2010~2018년 8년 재임)은 구청장직을 ‘막사발’에 비유했다. “이것도 받고 저것도 받고, 때에 따라서는 되게 못생기게 보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상당히 고풍스럽기도 하고 귀한 자리가 될 수 있는….” 성북구 구호 중에 ‘마음이 모여 마을이 됩니다’라는 구호가 있는데, 그렇게 마음을 모으는 막사발 같은 몫이 구청장의 자리라고 김영배 구청장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생각하는 구청장의 제일가는 덕목, 자질은 무엇일까?

먼저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공적 도덕심’을 꼽았다. 구청장은 수많은 의사 결정의 영역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판단해야 하므로 좀더 많은 사람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판단하는 능력과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김 구청장의 의견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엠비(이명박 전 대통령)와 정반대”라는 우스갯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무엇보다 ‘공감능력’이 탁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농성하는 사람들에게 ‘노가다라도 하지, 왜 여기 와서 맨날 농성을 하고 그러냐?’고 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과 얼굴 마주해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돼요.”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다빈치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기 때문에 비행기가 나오고,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있고 난 뒤 그게 입증됐잖아요.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비전 제시 능력, 비전을 만들지 못하면 그냥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우리 구의 직위표를 보면 구청장 위에 구민이 있었어요”라며 ‘구민의 공복’이라는 생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구청장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고 결정을 모은다는 점에서 대통령하고 비슷하다”며 구청장은 ‘동네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구청장도) 시대정신을 감지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대정신의 기본이 없는 사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대착오적인 정책 틀을 보인 대통령”이라고 혹평했다.

김도형 이현숙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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