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백년가게

“이태원서 무슨 책장사냐”던 외국책 중고서점, 44년째 건재

포린북스토어 since1973

등록 : 2017-12-28 15:00
서울서 가장 오래된 외국책 헌책방

미군들이 버린 폐지 수집서 시작

고전 명작 포켓북에서

카탈로그까지 미국문화 전파 역할

영어까막눈 최기웅씨 영어책 거래

처음엔 내용보다 종이 질이 가격 결정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 지정돼

백화점 카탈로그는 상품 정보의 보고


미군의 존재는 싫든 좋든 한국 사회와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40여년 역사의 이태원 외국책 중고서점인 ‘포린북스토어’는 미군 쓰레기장에서 나온 책들을 가지고 출발했다. 이 작은 책방을 통해 미국의 지식과 문화와 산업정보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었다. 미군부대 헌책 중개상이었던 주인 최기웅씨는 그 산증인이다.

용산구 이태원 어귀, 전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육교를 건너 남산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푸른색과 파란색 줄무늬 차양을 친 헌책방이 나온다. 차양 위쪽에 초록색으로 ‘FOREIGN BOOK STORE’라고 쓴 간판이 붙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듯한 외국책(주로 영문 서적) 중고서점 ‘포린북스토어’다.

1973년, 남산 해방촌이 바라다뵈는 이태원 언덕배기에 들어와 헌책방을 시작해 1975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햇수로 44년째다. 주인 최기웅(74)·김영자(69)씨 부부가 날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천장까지 쌓인 책 약 10만권을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포린북스토어는 교보문고나 옛 종로서적 같은 큰 서점이 본격적으로 외국책을 수입해 팔기 전까지 주한 외국인, 한국 지식층과 학생들에게 영어 원서와 교재를 공급한 ‘보이지 않은’ 지식중개상 중 하나였다. <플레이보이> 같은 대중잡지류를 ‘야매’로 팔기도 했지만, 미군 피엑스(PX)에서 흘러나온 미국 유명 백화점 카탈로그(개발도상의 한국인 눈에는 산업디자인 정보가 가득 담겨 있었다)를 세운상가 등에 공급한 것도 포린북스토어 같은 미군부대 쓰레기장의 ‘종이수집상’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개발도상 시기의 한국 교육과 산업 발전에 적지 않은 몫을 한 셈이다. 서울시가 2015년 이 작고 낡은 원서 헌책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 것은 이런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간직한 덕분일 테다.

#1966년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결핵 판정을 받아 의병제대한 23살 최기웅은 일거리를 찾아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어느 날 삼각지 근처 고물상에서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책과 컬러 잡지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그림 솜씨를 발휘해 잡지 속 컬러 페이지를 밑그림 삼아 푸시킨의 <삶>, 구르몽의 <낙엽> 같은 유명 시를 쓴 시화를 만들어 명동 골목에서 팔았다. 그 뒤로 최기웅은 답십리 판자촌에 살던 가난한 화가 부부에게 시화용 컬러사진을 대주기 위해 용산은 물론 김포, 문산, 동두천, 군산 등 전국의 미군부대 고물상과 쓰레기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어를 모르는 그가 반세기 가까이 영어책을 거래하게 된 인연의 시작이었다.

최기웅은 미군부대 쓰레기장이나 폐품수집장에서 ‘꿀꿀이죽’을 사먹으며 다양한 헌책들과 만났다. 포켓북 노블(소설), 대중문화 잡지, 유명 백화점 카탈로그, 비행기에서 나온 잡지 등이 주요 수집 대상이었다. 처음엔 내용보다 종이 질이 값을 결정했다. 서점보다 시장의 포장지나 봉지용으로 더 잘 팔렸기 때문이다. 이발소에도 많이 공급했다. 문고판의 얇은 지질은 면도칼을 닦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최초의 미군 책들은 읽기용이 아니라 ‘장사용’이었던 것이다. “영어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고전 명작 포켓북이 잘 팔렸어요. 구하기 힘든 영영사전이 들어오면 수지맞는 날이었지요.”

#미군 책의 ‘가치’에 눈을 뜬 최기웅은 종이 수집 일이 없는 날에는 헌책 노점을 했다. 달러 거래 규제로 외국책을 정식으로 수입하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원서 사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었으나, 점차 대학교육이나 영어교육 수요가 늘면서 원서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기웅의 노점은 종로2가 화신백화점 부근 골목이었다. 발동기로 움직이는 차 ‘딸딸이’에 책을 싣고 단속을 피해다니며 팔았다.

최기웅에게 돈다발을 안겨준 것은 소설책 <러브 스토리>였다. 영화 <러브 스토리>는 1970년 미국에서 대히트하고, 1971년 말 서울에서 개봉돼 역시 대히트를 쳤다. 최기웅은 미군부대에서 구한 원서로 복사판을 만들어 명동과 종로, 고속버스터미널 등지에서 팔았다. 이대에서 영어 교재로 채택되면서부터는 대학가 서점에도 납품했다. “짜장면 값의 네배였는데도 없어서 못 팔았어요.”

#그는 그렇게 불법 복사판 <러브 스토리>를 팔아 번 돈으로 지금은 사라진 삼일빌딩 옆 청계천변에 처음으로 헌책방을 열었다. 각종 원서 교재들, 대중문화 잡지들과 화집, 카탈로그 등을 놓고 팔았다. 장사는 잘되었다. 서른살도 채 안 돼 주머니에 돈이 가득해진 그에게 유혹이 잇따랐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벌어놓은 돈을 마구 썼다. 덤핑 책 복제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1차 유류파동(1973)이 터지면서 덤핑 책 사업은 치솟는 재료비를 견디지 못해 ‘폭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청계천 책방도 건물 주인이 가게를 탐내는 바람에 밀려나고 말았다. 빚에 쫓긴 나머지 노숙생활까지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최기웅은 미군부대 쓰레기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미군 헌책을 수집해 시장이나 종로서적 같은 큰 서점에 넘기는 ‘나까마’(중간상) 일을 했다. 평정을 되찾은 최기웅은 한눈에 반한 5살 연하의 양품점 아가씨 김영자와 결혼해 이태원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부지런하고 수완 좋은 부부는 1975년, 지금의 자리에 있던 판잣집을 사들여 조금씩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1층 13평, 2층 9평짜리 작은 이층집이었다. 최기웅은 이 집을 자랑스레 가리키며 말했다. “미군 자녀들이 공부하고 버린 초등학교 교재를 차떼기로 종로서적에 납품해 번 돈을 모아 지었죠.” 건물이 완성되고 서점이 꼴을 갖추자 간판도 걸었다.

“We Buy, Sell and Trade All Kinds of Books”(우리는 모든 책을 사고팝니다)

미군부대 쓰레기장의 폐지수집상으로 출발한 서점다운 자신감 넘치는 모토였다. 이렇게 포린북스토어는 영어에 목을 맨 학생과 부모들에게 가성비 좋은 영어 교재 공급처 몫도 톡톡히 해냈다.

‘포린북스토어’의 전경.

#어쩌면 미군 피엑스 카탈로그야말로 포린북스토어가 수집해 팔았던 미군 헌책 중에 가장 ‘유용’한 품목이었는지 모른다. 후진국 기술자나 상인들에게 미국 유명 백화점의 제품 카탈로그는 상품 정보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그런 카탈로그가 처음에는 고급 컬러 종이로만 소비되다가 점차 그 용도에 맞게 거래되기 시작했다. 패션의류를 비롯한 각종 잡화, 보석, 가구 등 제품 사진과 사양을 담은 여러 종류의 카탈로그들이 최기웅 같은 수집상을 통해 서울의 고급 양복점, 양장점, 양화점(구둣방), 보석 가게, 세운상가 등의 장인들에게 전해졌다.

카탈로그가 인기를 얻자 최기웅은 여러 백화점 카탈로그를 제품별로 재편집해 팔아 크게 재미를 보기도 했다. 미군부대에서 폐지로 버린 것이 우리 산업 현장에 수많은 산업디자인 정보를 제공해준 셈이다. 최기웅은 무역시장 개방이 이뤄진 1980년대 초반까지 가장 규모가 큰 카탈로그 수집상 중 하나였다. “고도성장기인 60~70년대에는 의류와 구두 카탈로그가, 80년대에는 전자제품 카탈로그가 많이 팔렸지요. 홍콩 보석 카탈로그 한권 팔면 며칠 생활비가 빠질 정도였고.”

내년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용산공원 조성이 시작된다. 처음으로 외국군 주둔지가 아니라 대규모 평화공원과 이웃하게 될 이태원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서울 안의 외국 거리로 번영할 가능성이 크다. 외국책 헌책방 포린북스토어도 그 새로운 시기를 내내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가 나이 드니까 건물을 인수하고 싶다는 분들이 생기지만, 정중히 사절하고 있지요.” 80살까지는 가게를 지킬 만한 체력이 있고, 무엇보다 포린북스토어의 전통을 지켜가고 싶기 때문이다.

책방 안쪽에는 서울미래유산 인증서와, 책방이 처음엔 고물상으로 허가받았음을 보여주는 허가증이 붙어 있다. 상단 오른쪽은 만화를 좋아했던 최기웅씨가 1985년 만든 만화주간지 1호. 지금은 희귀본이 되었다.

“우리 책방의 역사를 이어갈 만하다 싶은 젊은이가 나타나면 이 건물과 책 모두를 적당한 시세에 넘겨줄 용의가 있습니다.” 기사에 써도 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기웅은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이지. 아직은 권력이 내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했다. “가방끈은 짧았지만 영어책 장사로 잘 먹고살았습니다. 책 팔면서 느낀 건 하납니다. 부디 크라시크(클래식)를 읽어라. 인생을 가르치는 문장은 고전 안에 다 있다.”

 

#최기웅은 1980년대 초반, 평생의 꿈이었던 영어 만화 주간지 사업이 좌절된 뒤 아내 김영자와 서점 일에만 전념한다. 지난 세월 수많은 업종의 가게들이 명멸했지만, “이태원에서 무슨 책장사냐” 타박받던 그의 책방은 여전히 건재하다. “청계천에서 건물주에게 쫓겨날 때 단단히 배웠죠.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가게는 자기 집이라야 오래갈 수 있다는걸.”

많은 대사관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 특성도 포린북스토어가 오래갈 수 있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주요 고객이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다.

개업 40주년 뒤로는 이들에게 기념 수건을 돌리는데, 1000여명이 감사 사인을 남기고 갔다. 외국인 말고는 학생, 인테리어 업자, 희귀 책 수집가, 영어교육에 열성인 학부모들이 주로 찾고 있다.

평생 영어책만 거둬서 팔아온 책방 주인을 닮은 서점. 펜·수채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글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