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공릉동 영구임대아파트의 대변신, 감각 ‘톡톡’

서울시, 노원구 공릉1단지SH아파트 ‘인지건강디자인’ 시행

등록 : 2017-11-30 15:01
노인·치매 어르신 비율 높은 단지

산책길 바닥에 표시 새기는 등

인지능력 강화하는 디자인 시행

치매 아내 둔 70대 “나들이 편해져”

서울 노원구 공릉1단지SH아파트에는 인지건강을 위한 다양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연두색의 단지 산책길.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지하철 7호선 공릉역에서 500m가량 떨어진 노원구 공릉동의 공릉1단지SH아파트. 서울시가 1994년 영구임대아파트로 지은 이곳에는 7개동에 1395세대가 산다. 취약계층을 위한 아파트여서인지 노인 인구 비율이 27.5%로 높고, 치매 어르신도 한동에 평균 6명이 산다.

지난 24일 이곳을 찾아가니, 여느 아파트 단지와는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850m 길이의 연두색 산책길이 단지 바닥에 그려져 있고, 동 입구의 숫자 표시도 유난히 컸다. 내부 엘리베이터 앞의 층 표시 역시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크게 만들어졌다. 바람개비와 해시계, 계절별 조형물 등 오감을 자극해 인지와 정서에 도움이 되는 시설물이 곳곳에 마련돼 있고, 숨은그림찾기와 투호 놀이 등으로 관찰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놀이터도 있다.

이런 독특한 모습은 1년여 전 서울시가 진행한 ‘실험’의 결과물이다. 서울시는 급속한 고령화와 치매로 인지능력이 약해진 어르신 등에게 도움이 되는 디자인을 생활공간에 입히는 ‘인지건강디자인’ 시범 사업을 지난해 10~12월 이곳에서 진행했다.


크고 넓은 건널목.

단지를 함께 둘러본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김원기 주무관은 “벽에 쓰인 아파트 동 숫자 높이가 1.5m 이상이라 눈에 잘 띄고 ‘감각키움길’이라 이름 붙인 연두색 보행로 덕분에 어르신들이 길을 잃지 않고 단지 안을 걸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치매 초기인 아내와 살고 있는 4동 주민 양아무개(76)씨는 “예전엔 외출하기가 겁이 났고, 특히 해가 떨어지면 거의 못 나갔는데 이젠 별다른 두려움 없이 바깥나들이를 한다”며 “단지 안의 정자나 벤치, 그림도 잘해놨다”고 만족했다.

인지건강디자인 효과는 주민들에게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시는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와 아주대 노인보건연구센터를 통해 시범사업 전인 지난해 10월과 사업 완료 이후인 지난 6월에 40살 이상의 단지 주민 100명에게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인지장애 비율이 70.8%에서 40.0%로 30.8%포인트나 크게 감소했다. 안전사고도 디자인 적용 이후 24.4%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 74.5%는 사업 뒤 ‘살기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눈에 쉽게 들어오는 층 표시.

이런 수치는 인지건강디자인이 적용되지 않은 월계동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주민과 비교할 때 차이가 크다. 월계동 단지의 경우, 같은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인지장애는 8.0%포인트 줄었으며 안전사고는 3.1%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총괄한 권순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회장(아주대 건축학과 교수)은 “공릉1단지 아파트 디자인의 변화가 주민들의 사고나 신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된다”고 평가했다.

서울시가 이처럼 아파트 단지에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것은 2014년부터다. 그해 양천구 신월동의 다세대·다가구 동네에 디자인을 입혔고, 2015년엔 영등포구 신길동의 아파트 1개동에 적용했다. 지난해 공릉1단지SH아파트를 거쳐 올해는 송파구 마천동의 저층 주거지 일대에 사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신체 활동을 하는 놀이터.

서울시가 벌이는 이 사업의 열쇳말은 ‘감각키움’이다. 어르신의 학습·적응 능력이 남아 있을 때 외부 활동과 오감 자극 기회를 늘리고 혼란을 감소시키는 등 일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인지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외국 연구 결과를 참조했다. 서울시는 어르신들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 안전하고 접근성 높은 산책로 오감을 자극하는 장소 자연스러운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의 조성에 집중했다. 또 디자인의 유지·관리와 활성화를 위해 공릉1단지는 주민들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인지건강 증진카페’도 내년부터 열 예정이다.

변서영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은 “인지건강디자인은 대상자의 행태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개발해 일상생활에서 인지능력을 높이고 정서를 안정시켜 치매를 대비하는 데 효과가 있다”며 “100세 시대를 맞아 고령화에 대응하는 디자인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