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기의 서울 골목길 탐방

휘황찬란한 서울 명소에도 골목은 살아 있다

중구 명동 골목 (상)

등록 : 2016-10-06 14:12 수정 : 2016-10-07 10:18
한밤중에도 휘황찬란한 명동이지만 어두운 골목이 있다. 그 골목에서 관광객과 방문객들에게 끊임없이 서비스하던 주방장과 알바생들이 잠시 쉬고 있다. 더러 조용한 성향을 가진 연인들도 지나간다. 명동의 골목은 명동의 실핏줄이다. 김란기 제공

옛 유행가 가사에 ‘비 내리는 명동 거리…’란 구절이 있다. 그런가 하면 명동의 중심 거리 이름을 ‘명동길’이라 한다. 거리는 뭐고 길은 뭘까? 그런데 명동에도 골목이 있을까? 한밤중에도 밝고 휘황찬란한 명동에도 어둡고 쓸쓸한 골목이 있을까?

지금은 도로 양측 건물들이 좀 더 고층이 되어 골목길처럼 보이지만 1970년대에는 3~4층의 그만그만한 근대식 빌딩들이 늘어선 거리가 ‘충무로 길’이었다. 그 거리 마루의 어느 건물 2층에 ‘티롤’(Tirol)이란 다방 겸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혼자도 자주 다녔다. 음악은 ‘솔베이지의 노래’,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에서 ‘포로들의 합창’, 스메타나의 ‘몰다우’ 같은 대개 대중적 클래식이었고, 커피 외에도 한국차도 팔았던 것 같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께 확인해본 바는 아니지만, 선생이 <장길산>을 쓰게 된 동기가 ‘티롤’을 자주 출입하다보니 티롤의 주인인 김수길 선생을 자주 만나게 되고, 그의 친구 안동해 선생도 만나게 되어 안 선생이 구해다 준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고 나서였다고 하니, 언필칭 ‘고전음악감상실’은 그 기능도 다양했을 터이다. 명동의 다방 이야기와 선술집 이야기는 이미 누누이 전해지고 있으니 여기서는 피해가겠지만 티롤도 문화예술인들의 단골 출입처였다니 감개무량할 뿐이다.

예전에는 충무로 길을 진고개라 했다. ‘진고개 신사’라는 노래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 진고개 길은 거리라면 거리였고, 골목이라면 골목이었다. 그 고갯길에 진눈깨비라도 쏟아질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쫙 끼친다. 초겨울 코트 깃 바짝 세우고 그 고개를 걷자면 얼굴에 부딪히는 차가운 바람은 소름 돋을 만큼 감성을 불러오기 때문이리라. 티롤을 자주 찾던 연극배우 추송웅도 그랬을까?

궁핍한 50~60년대를 지나고 70년대 대중문화의 꽃이 명동에서 만발하자 대중들도 명동으로 모여들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그나저나 앞서 이야기한 ‘비 내리는 명동 거리’를 연계해 생각하면 오래전 진고개는 엄청나게 진 고갯길이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고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지금의 회현동 근처다. 일본인들이 한성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강화도조약 직후이니 이미 1880년대 초다. 왜성대 일대(옛 주자동)에 자리 잡은 거류민들은 큰비만 오면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길은 온통 질퍽질퍽해서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학교 졸업자부터 60세까지의 일본인 거류민 1인당 10전씩, 이른바 분두과금(머릿수대로 돈을 거둠)하여 도로 개수를 했는데(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국역 경성발달사>, 경인문화사, 2010. 10, 131쪽) 그 후로는 좀 나아졌던가 한다.

그렇지만 진고개란 이름은 계속 남아 ‘진고개 신사’까지 내려왔으니, 기실 그 신사는 일제강점기 직후 충무로 길 이야기일 것이다. 1960년대의 보릿고개를 넘어선 뒤 70년대부터 충무로는 오히려 후퇴하고 명동 골목길 속으로 인파가 몰리고 연말이 되면 북새통이 되는 진풍경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일본 관광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명동인 것은 아닐까 한다. 그들은 서투른 발음으로 “면돈 면돈” 하면서 명동을 찾아오는데, 왜일까? 우선 아무래도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혹시 옛 ‘본정통’(혼마치)의 기억에서 기인하지는 않았을까? 앞서 언급한 진고개를 개척하고 그들이 일군 지역이 충무로 일대였고 그 지역이 여전히 살아 그들의 기억을 자극할지 모른다.

그런 명동이 60~70년대에 한국 문화예술의 발상지 구실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분의 말마따나 한국전쟁 뒤 전화를 복구하는 가난한 50~60년대를 살아오면서, 시대의 부평초가 되어 문학적 욕구를 발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명동은 해방구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명동 골목 이야기다. (계속)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