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장이 저서인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을 들고 있다. 최 소장은 20년간 신문사에서 지낸 뒤 47살에 퇴사해 성곽길을 주제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해왔다.
신문사에서 광고와 콘텐츠 제작 맡다
회사 나오니 어디에 가기는 힘든 나이
출판 등 사업했지만 ‘배신’에 마음앓이
한양도성 오르니 마음 위로…공부 열중
기름값 안 되는 고료에도 꾸준히 연재
마케팅 강의에 성곽길 내용 입혀 ‘호평’
국방부 등서 잇따라 강의 의뢰 들어와
“한양도성 유네스코 유산 등재 기여” 꿈
‘인생 2모작’이 보편적인 삶의 형태가 돼가고 있다. 정년이 가깝거나 넘긴 시니어에서부터 30~40대 청장년까지 모두 ‘100살 인생 시대에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품는다. 2022년 전태일문학상 생활글부문 수상자인 강정민 작가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찾아가 “왜” “어떻게”를 들어본다. 월 1회 연재.
2012년 47살에 신문사를 퇴사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한양도성 성곽길 전문가가 된 이가 있다. 얼마 전 새 책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아임스토리 펴냄)을 출간한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최철호 소장이다. 최 소장을 을지로 찻집에서 만났다. 최 소장은 왜 성곽길 전문가가 됐을까? 그리고 10년 만에 어떻게 성곽길 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신문사에서 10년간 광고 영업을 했고 이후 10년은 광고와 콘텐츠 제작을 했다. 대학 전공은 산업공학이라 성곽길과 별 관련이 없다. 최 소장 삶 어디에서 성곽길과 접점이 생겼는지 물었다.
“대학생 때 역사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사찰로 답사를 가는 거예요. 가서 탁본 뜨고 성곽길 걷고. 우리는 보통 성을 만든 임금님이 누구인지 말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성 돌을 쌓은 백성이 궁금했어요. 그리고 이런 걸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 거 같아요.”
최 소장이 한양도성 내의 주요한 ‘성지’를 얘기해주고 있다
최 소장 나이 마흔다섯 때 회사가 문을 닫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최 소장은 배가 침몰하기 전에 배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너 혼자 살자고 퇴사하냐?’며 최 소장을 말렸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신문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동료들과 함께했다. 후임들을 다 다른 곳에 이어주고 퇴사했다. 나와 보니 어느덧 마흔일곱 어디에 들어가긴 힘든 나이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출판과 커피였다. 신문사에서 콘텐츠 제작을 할 때도 출판과 커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관련 사업에 참여하며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혼자 인왕산에 무작정 올랐다. 한양도성을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해졌다. 한양도성 성곽길이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길을 걷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조선왕조실록과 자료를 뒤졌다. 최 소장은 성곽길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란 걸 알게 된다. 성곽길을 공부하면 할수록 흥미가 더 커졌다.
최 소장이 자신의 인터뷰 기사와 비교하며 ‘한양도성도’를 설명하고 있다.
도읍지에 있는 성곽은 ‘도성’이고, 지방 고을에 있는 것은 ‘읍성’, 산에 있으면 ‘산성’이다. 한양도성은 동서남북에 각각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라는 4개의 대문을 갖추고 있었다. 총길이는 18.627㎞에 이른다. 600년 전, 이 긴 한양도성을 누가 쌓았을까?
1396년 한양도성이 처음 지어졌을 당시, 한양 인구는 20여만 명에 불과했다. 한양도성을 쌓는 데 총 19만7천 명의 인력이 동원됐는데, 동원된 사람은 한양 사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백성이었다. 성곽을 97개 구간으로 나눠 지방마다 관할 구역에 대한 책임을 지웠다.
소집된 백성들은 성곽을 98일 만에 완성했다. 요즘같이 기술이 발달한 시기도 아닌데 산꼭대기에 있는 성곽까지 98일 만에 완성했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였다. 최 소장은 짧은 시일에 성곽길을 완성해낸 백성들의 힘과 지혜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최 소장은 2015년 경민대 광고홍보학과 초빙교수가 되어 마케팅 강의를 했다. 마케팅 강의에 역사와 성곽길 내용을 입혔다. 그리고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들어 2015년부터 ‘우리 동네 유래를 찾아서’라는 기사를 잡지에 연재했다. 2017년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펴냄)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성곽길 관련 첫 강연 의뢰는 2017년 국방부에서 들어왔다. 국방부가 강연을 의뢰한 이유는 성곽이 본래 군사시설이기 때문이다. 강연 주제는 ‘국방과 성곽에 얽힌 이야기’였다. 기존 국방부 강연과 달리 새로운 접근이라 신선하다는 평이 많았다.
뒤이어 한국생산성본부에서 강연 의뢰가 들어왔다. 생산성본부는 ‘지리산 관광아카데미’를 개최했고, 최 소장은 거기서 역사와 문화관광에 관한 강연을 했다. 6개월에 24회 강연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강연을 듣는 지역 유지들이 팔짱을 끼고 ‘어디 해봐’ 이런 표정을 지었다. 지리산과 그 인근에는 고성산성, 아막산성, 황석산성, 교룡산성 그리고 남원읍성 등이 있고 각 성곽엔 역사가 있었다. 최 소장이 성곽의 역사를 문화마케팅 관점에서 풀어내자 사람들 반응이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언론사 경험에 성곽길 연구를 결합한 그의 경력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시기가 닥치며 계획된 강연이 중단돼 최 소장도 2년 넘게 추운 겨울을 보냈다. 올해 들어 강연이 다시 시작되면서 최 소장도 바빠지고 있다.
지난 8월엔 최근 5년간 기고했던 글을 모아 두 번째 책 <한양도성 따라 걷는 서울기행>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자 강연을 들었던 분들이 축하한다며 연락해주신다. 이렇게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에 최 소장은 힘을 얻는다고 했다.
앞으로 이쪽 일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최 소장에게 물었다.
“우리 연구소에서 절기마다 진행하는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이나 ‘한양도성 성곽길 아카데미’ 강좌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일 거예요.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디든 성곽이 있어요. 지역에도 관련 강의가 많고 지방 자료는 향토사학자분들이 많이 가지고 계세요. 강의를 듣고 꾸준히 연구하시다 보면 기회가 생길 거 같아요. 저도 일간지나 월간지에 글을 연재하지만, 답사를 위한 기름값도 안 되는 원고료를 받고 연재한 곳도 많아요. 이런 게 쌓이다 보면 자료가 되고 제 공부가 되니까 했어요. 그렇게 하면 책도 내고 강연할 기회를 얻게 되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을지로 골목에 있는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에 가기 위해 찻집을 나섰다. 앞서가던 최 소장이 잠깐 기다려달라며 인쇄소로 들어간다. 조금 뒤 한양도성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들고나왔다. 다음 날 강의 때 쓸 자료라 했다.
연구소에 들어서니 여러 가지 한양도성 지도가 걸려 있다. 최 소장이 지도에 관해 설명한다.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등재에 실패한 원인은 서대문인 돈의문과 서소문인 소의문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요. 지금 돈의문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왔고 소의문 자리에도 박물관을 세우면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 소장은 한양도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데 자신이 미력하나마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그런 마음을 품고 내일도 강연하러 성곽길에 오를 것이다.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인스타계정 @sungguac_18.627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89@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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